주말에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생 3명이 추락해 숨졌다. 이들은 부산의 A예술고 무용과에 재학 중인 친구 사이였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 등을 토대로 이들이 입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학원가에서는 “무용 전공 학생들의 경우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인한 압박감이 더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21일 오전 1시 39분쯤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A예술고 2학년 여학생 3명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출동한 소방대원이 이들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이 아파트 방범카메라에는 이들이 20일 오후 11시 42분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꼭대기 층인 20층에서 내리는 모습이 찍혔다. 3명 모두 이 아파트에 살지는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모두 유서를 남겼다. 유서 내용은 “학업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크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학교 폭력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고 타살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술이나 약물을 먹은 흔적도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사건 전날인 20일에도 정상 등교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아침에 어린 딸을 잃은 유가족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B양의 어머니 김모씨는 “딸이 무용을 계속할지 고민하다가 지난 4~5월 잠시 쉬기도 했다”며 “2주 전부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B양은 유서에 ‘엄마 고맙고 언니도 잘됐으면 좋겠다. 주변 친인척 모두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썼다고 한다.

김씨는 “그렇게 고마운 거 알면서 왜 이렇게 일찍 가느냐”며 통곡했다.

C양의 아버지는 당시 일본 출장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20일 밤 10시 30분쯤 딸이 전화했는데 미처 못 받았다”며 “그게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했다.

C양의 친구들도 빈소를 찾았다. 한 학생은 “평소 밝고 무용도 공부도 열심히 하던 친구인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이 숨진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A예술고 교직원과 지역 학원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무용과 학생이던 이들은 학교 수업 외에도 방과 후 특강과 학원 수업 등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말고사와 실기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무용 학원을 운영하는 홍모씨는 “요즘은 지방대에 무용과가 거의 사라졌다”며 “음악, 미술 등 다른 예체능 전공과 달리 전국 아이들과 경쟁을 뚫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야 한다”고 했다. 홍씨는 “무용 전공은 1~2달마다 크고 작은 콩쿠르가 열려 내 실력이 그대로 드러난다”며 “몸무게, 체형 등도 늘 관리해야 해 다른 전공보다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A예술고의 한 교직원은 “과거에도 무용과 학생이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무용을 전공하는 고교생의 경제적 부담도 큰 편이다. 부산의 경우 무용 학원 수업료만 한 달에 60만~70만원이라고 한다. 입시에 가점이 큰 콩쿠르는 ‘작품비’만 5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작품비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안무 작품을 사는 데 드는 돈이다. 의상비는 별도다. 무용 학원 관계자는 “의상비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300만원은 잡아야 한다”고 했다.

부산시교육청은 A예술고에 대해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운영 전반을 조사해 혹시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교직원과 학생 등을 추가 조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신성만 한동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 학생이 함께 자살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세 학생 모두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청소년들은 특히 심리적으로 취약하다”며 “한 명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른 친구들도 영향을 받기 쉽다. 함께하니 더 쉽게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고 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조정훈 의원실(국민의힘)이 교육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자살한 초중고 학생은 214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108명)과 비교하면 7년 만에 2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