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 하나만 넘으면 지리산 천왕봉 아입니까. 해발 300m에 덕장이 있으니 아침 저녁 온도 차가 커 곶감이 맛있게 마르지예.”
지난 28일 찾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한 곶감 농가에서 만난 홍봉의(60)씨가 아이 손바닥만 한 곶감을 내밀며 말했다. 그를 따라 곶감 건조장에 들어서니 높이 4.5m 천장 아래로 주렁주렁 100개씩 매달린 주황빛 곶감 5만여 개가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시큼하면서도 달큼한 곶감 향이 마스크를 뚫고 코끝을 자극했다. 40여일간 말리는 이곳의 곶감 당도는 일반 곶감 당도인 35브릭스(Brix)보다 높은 55브릭스에 달한다고 한다. 홍씨 아내 문필선(61)씨는 “올해는 농가마다 곶감 생산량이 작년보다 늘었다”며 “하루 택배 주문 건수만 50건씩 밀려든다”고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호평한 산청곶감… 아마존 진출도 추진
산청곶감은 지난해 생산량이 전년 대비 30% 넘게 늘 정도로 풍작을 맞았다. 곶감을 만드는 떫은 감인 고종시(高宗柿)가 풍작이라 곶감 생산량도 2020년 2100t에서 지난해 약 2800t으로 늘었다. 생산액 역시 2020년 300억원에서 100억원 넘게 늘어 4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산청곶감은 곶감계의 명품으로 손꼽힌다. 2010년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홍보차 선물했는데 여왕이 ‘산청곶감의 오랜 전통이 흥미롭고, 포장도 아름답다’는 내용의 감사 편지를 산청군에 보내왔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온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만찬 때 나온 후식도 산청곶감이었다.
경북 상주, 충북 영동과 함께 국내 3대 곶감 주산지인 산청에는 시천·삼장·단성면 등에 곶감 농가 1300여 곳이 있다. 농가마다 연간 수만 개에서 100만개씩 곶감을 생산한다. 해마다 10월 말 고종시 수확에 들어가 건조를 시작한다. 감을 깎아 말릴 땐 1접(100개)씩 세로로 매달아 40여 일간 말린다. 말린 감은 무게에 따라 40g 이하부터 최대 65g 이상까지 나눈다. 곶감이 마르면 모양틀로 곶감을 눌러 동그란 도넛 모양으로 찍어낸다. 최호림 지리산 산청곶감 작목연합회장은 “도넛 모양은 산청곶감의 트레이드 마크”라며 “수분이 고루 퍼지고 씹었을 때 식감도 찰져 고객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40여 농가가 힘을 모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미국 아마존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도 아마존에 곶감과 비슷한 ‘말린 감(Dried Persimmon)’이 판매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산청곶감의 아마존 입점을 추진하고 있는 이지훈(53)씨는 “미국에선 곶감이 견과류 등과 함께 영양식으로 소비되고 있다”며 “상온에서 유통이 가능한 형태로 가공하거나 미국 가정에서 곶감을 직접 건조해 먹는 방식을 개발해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남도가 나물, 간장, 유자 주스 등 94개 품목을 아마존에 입점시켰으나, 국내 곶감이 아마존에서 판매된 적은 없다. 입점을 추진 중인 농가들은 법인을 만든 뒤 국내 기업의 해외 전자상거래 수출을 지원하는 정부 지원을 받아 절차를 밟아나갈 계획이다.
산청군은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 홍콩, 싱가폴, 베트남, 태국 등에 곶감을 수출해 왔다. 최근 3년간 해외 수출량만 20t으로, 27만5600달러(약 3억2700만원) 규모다.
◇고종 황제에게 진상한 고종시로 만들어… 곶감 축제도 열려
산청은 예로부터 고종시로 유명했다. 조선 시대 말 고종 황제에게 진상했다고 해 고종시란 이름이 붙었다. 섬유질이 부드럽고 당도가 뛰어난 고종시는 최근 6년 연속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대표 과일 선발 대회에서 산림과수 분야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산청의 토양과 풍부한 햇살, 알맞은 강수량은 감나무를 키우고 곶감을 건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산청군 이은진 산촌소득담당은 “좋은 토양에서 자란 고종시로 만든 산청곶감은 다른 곶감보다 비타민 C 함유량도 2배에서 최대 20배 많다”고 했다.
산청군은 산청곶감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농가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매년 8~9월에는 우수 고종시 생산 기술 교육을 하고, 3년 전부턴 총 71억원을 들여 농가에 냉온풍기 등 곶감 건조 시설도 지원했다. 앞으로도 한해 20억원씩 들여 표준화된 곶감 건조 시설을 보급할 계획이다. 지난해부터는 1인 가구 시대에 맞춘 소포장과 각종 선물용 박스를 제작·지원하고 ‘곶감이’ 등 곶감 캐릭터도 개발해 홍보하고 있다. 곶감 떡, 홍시 젤리 등 가공식품도 개발하고 있다.
오는 6일부터 23일까지는 제15회 지리산 산청곶감축제도 열린다.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온라인 행사를 중심으로 개최된다. 축제 기간에는 산청곶감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행사도 한다. 산청곶감 그리기, 동화 ‘호랑이와 곶감’ 읽기, 구매 인증 행사 등도 열린다.
이재근 산청군수는 “무공해 산청에서 키운 곶감을 황금 작물로 육성하고 판로도 확대해 세계에 산청을 알리는 먹거리로 키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