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최초의 ‘미스 아메리카’ 우승자인 미국의 가수 겸 배우 바네사 윌리엄스(61)가 오는 10월 영국 런던의 극장가 웨스트엔드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연을 맡는다고 미 연예매체들이 22일 보도했다. 윌리엄스는 뮤지컬에서 가상의 패션지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를 연기할 예정이다. 전날 윌리엄스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극중 의상인 새빨간 투피스 차림의 윌리엄스 사진을 올려놓고 “그녀는 런웨이를 지배할 준비가 됐다”고 썼다.

바네사 윌리엄스가 뮤지컬에서 연기할 '미란다 프리슬리' 옷차림으로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려놓았다. /인스타그램

이 뮤지컬의 원작은 패션지 ‘보그’의 편집장 조수 출신인 로렌 와이스버거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 2003년 출간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패션계의 화려하면서도 잔인한 실상과 함께 젊은 패션지 기자 지망생의 분투를 그려냈다. 2006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도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에서는 백인 배우 메릴 스트립이 지옥에서 온 악마 같은 프리슬리 편집장을 연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18년 뒤 흑인 배우인 윌리엄스가 무자비한 완벽주의자 프리슬리를 연기한다. 뮤지컬은 2022년 미국 시카고에서 초연됐으며 팝의 전설 엘턴 존이 음악을 맡았고,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다.

바네사 윌리엄스 누드사진 무단 게재를 예고한 1984년 9월 성인잡지 펜트하우스 표지. /X

윌리엄스는 미국 대중문화계에서 소수 인종의 수난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1983년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서 흑인 최초로 우승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인종 차별주의자들로부터 여러 차례 협박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과거에 찍은 누드 사진이 자신도 모르게 성인 잡지 펜트하우스를 통해 무단 유출된 후폭풍으로 미스 아메리카 직위를 박탈당했다. 연기와 노래에도 재능이 뛰어난 팔방미인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로 연예계에서 퇴출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1992년 발표한 발라드곡 ‘세이브 더 베스트 포 라스트’가 빌보드 핫10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1995년에는 디즈니 역사상 처음으로 원주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의 주제가 ‘컬러스 오브 더 윈드’도 불렀다. 이 노래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가수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그에게 ‘미인대회 왕관 박탈’ 이력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종 다양성이 미국 사회의 주류 가치로 자리잡으면서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흑백혼혈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였던 2015년 9월 개최된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으며 윌리엄스는 이 대회와의 악연을 풀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샘 해스켈 미스 아메리카 조직위원장은 방송 도중 윌리엄스에게 공개 사과하면서 “당신은 영원한 미스 아메리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