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밋 틸(왼쪽)과 어머니 메이미 틸-모블리의 생전 다정한 모습. 에밋 틸이 백인 남성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시신으로 돌아오자 메이미는 아들이 누운 관 덮개를 연 채로 조문객을 맞았다. /미국 의회 도서관

1955년 8월 24일 미국 시카고에 살던 열네 살 흑인 소년 에밋 틸은 미시시피주(州) 소도시 머니에 있는 친척 집에 놀러갔다. 사촌들과 과자를 사러 식료품점에 갔다가 실랑이가 벌어졌다. 백인 여주인이 흑인 소년이 자기에게 치근덕댄다고 주장했다. 흑인 소년은 가게 앞에서 그저 휘파람을 불었을 뿐이라고 했다.

당시 미시시피를 비롯한 미 남부 지역은 엄격한 인종 분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가게 분위기가 일순간 험악해지자 틸과 일행은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28일 새벽 틸이 머물던 친척 집에 백인 남성 두 명이 들이닥쳤다. 여주인의 남편과 이복형이었다. 두 사람에게 끌려나간 틸은 사흘 뒤 탤러해차이강의 그라볼 선착장 부근에서 온몸이 구타당한 익사체로 발견됐다. 목에는 줄이 칭칭 감겨있었고, 시신에는 대형 환풍기가 매달려있었다.

로자 파크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등과 함께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을 들불처럼 타오르게 한 주역으로 꼽히는 틸의 납치 살해 사건 현장 세 곳이 미 대통령이 지정하는 국가기념물이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각) 틸의 시신이 발견된 선착장 일대, 장례식이 거행된 시카고 로버츠 템플 교회, 피의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던 탤러해차이 카운티 법원 등 세 곳을 국가기념물로 지정하는 포고령을 발동했다. 이날은 살아있다면 여든둘이 됐을 그의 생일이었다.

2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에밋 틸 사건 관련해 국가기념물로 지정한 탤러해차이 카운티 법원. /USDA

바이든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법을 정의로운 방향으로 바꿔간, 흑인에 대한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과 치유의 역사를 이 기념물에서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세 곳은 1906년에 제정된 국가기념물법에 따라 국립공원관리청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연방 정부 예산을 들여 관림 시설을 새로 짓고, 교육 프로그램과 추모 사업 등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철모르던 흑인 소년이 백인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됐고, 가해자들은 처벌을 피해갔으며, 아직까지도 석연치 않은 점이 적지 않다는 극적인 요소들 때문에 ‘에밋 틸 사건’은 지금까지도 영화·책 등을 통해 조명되고 있다.

이번에 지정된 기념물의 공식 명칭은 ‘에밋 틸과 메이미 틸-모블리 국가기념물’이다. 메이미 틸-모블리는 에밋 틸의 엄마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을 맞은 틸-모블리는 아들이 누운 관 덮개를 열어놓고 로버츠 템플 교회에서 조문객을 맞도록 했다. 엉망이 된 시신 얼굴을 다듬기라도 하자는 제안을 “내가 본 걸 온 세상이 봐야 한다”며 뿌리쳤다. 참혹한 시신이 공개된 교회는 흑인들을 결집시켰고, 사흘 동안 12만5000명이 다녀갔다. 어머니의 결단으로 아들 사건에 전 미국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후 탤러해차이 카운티 법원에서 열린 피의자 재판엔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장례 17일 뒤 열린 선고 공판에서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피고인 두 명에게 무죄를 평결했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로 흑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던 그해 12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42세 흑인 여성 재봉사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에 스물여섯 살이던 흑인 목사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대대적인 버스 타기 거부 운동을 펼치면서, 미국 전역에서 흑인 민권 운동이 확산했다. 파크스는 훗날 인터뷰에서 “그때 에밋 틸을 생각하면서 버스 자리를 양보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이뤄진 국가기념물 지정은 흑인 민권 운동의 시작점에 틸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 이뤄진 것이다. 아울러 이 조치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흑인 유권자를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려는 민주당과 바이든의 최근 노력과도 일맥상통한다.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은 이듬해 1월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범행이 맞는다고 시인하면서 이 사건은 미국 사법 체계의 흑역사로 남았다. 피고인, 메이미 틸-모블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전모가 있다는 식의 주장이 끊이지 않으면서 미 사법 당국은 21세기 들어 두 차례 재수사를 진행했다.

연방수사국은 추가 사건 가담자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2004년 재수사를 개시했다. 땅속에 묻혔던 시신을 꺼내 부검을 실시했지만, 추가 기소 등 의미 있는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2018년 미 법무부와 연방지검은 이 사건을 다시 조사했다. 그해 출판된 ‘에밋 틸의 피’라는 책에서 저자 티머시 타이슨이 “당시 가게 여주인과 인터뷰를 했는데 ‘흑인 소년이 추근댔다고 한 증언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털어놨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위증 여부를 조사한 것이다. 법무부는 이 같은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결론 내리고 2021년 사건을 종결했다.

에밋 틸 사건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 ‘틸’은 지난해 가을 미국, 한국에서는 올해 3월 개봉했다. 나이지리아 출신 흑연 여성 감독인 치노녜 추쿠가 메가폰을 잡았고, 할리우드 스타 우피 골드버그가 에밋 틸의 외할머니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