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을 찾아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있는 마티 월시 미 연방 노동부 장관. 노조 지도자 출신인 그는 NHL 선수노조 사무총장으로 선수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최근 사의를 밝혔다. /트위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노동 정책을 총괄해온 마티 월시(56) 노동부 장관이 이달 중 물러나 북미아이스하키리그 선수노조(NHLPA) 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노조를 이끌어달라는 선수들의 영입 제의를 받아들이고 ‘노조 상근자’로 변신한 것이다. 건설 노조 지도자 출신으로 미 권력 승계 서열 11위인 연방 노동부장관까지 오른 그가 ‘현장 복귀’ 결정을 내리자, 미국 노동계에서는 “역시 뼛속까지 노동자답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고 미 공영방송 NPR은 보도했다.

NHLPA는 최근 월시 장관의 사무총장 영입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아홉 달 동안 공을 들였다”고 했다. 사무총장 인선위원인 현역 선수 카일 오크포소(34·버펄로 세이버스)는 “그는 강력한 노조의 배경을 가진 검증받은 지도자”라며 “그가 가진 열정과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월시 장관도 “노동운동가와 공직자로서 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노조를 최고의 팀으로 만들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매사추세츠주 아일랜드계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그는 노조 간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젊은 시절부터 노동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스물한 살 때 보스턴 지역 건설노조에 가입한 뒤 탁월한 조직 운용 능력으로 주목받았다. 1997년부터 16년 동안 매사추세츠 주의회 하원의원을 지냈고, 미 북동부 지역 건설노조 연합체인 보스턴 건설·무역 위원회도 이끌었다. 2013년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역사 도시이자 교육 도시인 보스턴 시장으로 선출돼 8년간 재임했다. 이 기간 유급병가 및 보육휴가, 미취학 어린이 무상 돌봄 서비스 등 서민 복지 정책을 대거 도입하면서 주목받았다. 2021년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첫 노동부 장관으로 월시를 낙점했다. 백인 남성인 그의 입각은 원주민 여성(데브 할런드 내무부 장관), 성소수자(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등에 가려 덜 주목받았지만, 현장을 누비던 노조 간부가 노동정책 사령탑이 됐다는 점에서 적잖은 화제였다.

1967년 창립된 NHLPA는 NHL 32팀 선수들의 연봉 협상과 복지, 인권 등의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스포츠계 활동 경험이 없는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을 삼고초려한 데는 최근 몇 년 사이 노조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것도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2021년 NHL 팀 코치가 과거 선수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스캔들이 터지면서 파문이 일었지만 노조가 역할을 못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NHL 선수들의 2018·2022년 올림픽 출전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불참을 결정한 NHL 사무국과 노조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월시 장관은 노동부 직원들에게 보낸 고별 편지에서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노조원 출신으로 일하는 사람을 위해 봉직한 것은 정말 특별한 권리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최고의 노동 친화적, 노조 친화적 대통령”이라고 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월시 장관 후임으로 중국계인 줄리 수 현 부장관을 지명했다. 그의 인준안이 통과되면 바이든 내각의 첫 아시아계 장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