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로 미국 사회에서 추앙받았던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1933~2020)이 내년 미국에서 발행되는 우표 주인공이 됐다. 미 연방우정청(USPS)은 최근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하고, 검은 법복에 흰 깃을 한 그의 얼굴이 그려진 우표 도안을 공개했다. USPS는 미국 역사에 획을 그은 주요 인물들을 주제로 우표를 발행해 왔는데, 법조인이 타계 3년 만에 우표 주인공이 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미 연방우정청이 내년에 발행할 예정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우표의 디자인. /USPS

샌드라 데이 오코너 연방대법관에 이어 미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었던 그는 유력 정치인이나 톱스타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인물이다. 뉴욕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암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가 된 뒤로는 성차별 문제에 정통한 법률가로 이름을 날렸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에 임명된 뒤 각종 현안에서 일관되게 약자와 소수자의 편을 들었다. 2015년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이 나왔을 때는 “결혼은 시민법적 전통에 기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결혼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의 꼬장꼬장하고 단호한 모습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팬덤을 일으켜 ‘악명 높은 RBG(그의 이름의 약자)’라는 별명과 함께 그를 주제로 한 드라마와 캐릭터 상품까지 등장했다. 2020년 9월 타계했을 때는 미국 전역에서 추모 열기가 일었다. 그러나 미국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그를 책망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긴즈버그가 사망하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보수 5대 진보 4로 비교적 팽팽했던 연방 대법원 이념 지형 구도가 6대3으로 보수에 압도적으로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비록 연방대법관이 종신직이라고 해도 긴즈버그가 생전에 진보 대법관이 물려받도록 민주당 대통령 집권 시에 용퇴했어야 했다는 개탄이 그래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