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안보는 어마어마한 압력에 직면해있다. 유럽은 지난 세기에 겪었던 파멸과 다시 마주하고 있다.”

12일 주한 폴란드 대사관에서 로브 바우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사위원장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국제사회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한국을 방문 중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위원회의 로브 바우어(60) 위원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격변하고 있는 국제 정세를 격정적 수사(修辭)로 표현했다. 그는 12일 서울 종로구 주한 폴란드대사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의 공세가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한국의 지원이 우크라이나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나토 군사위원회는 군사 현안과 관련해 나토 차원의 최종 결정을 내리는 핵심 조직이다.

네덜란드 해군 제독인 바우어위원장은 2017년부터 4년간 네덜란드 합참의장을 지내고 지난해부터 나토 군사위원회를 이끌어왔다. 그는 개전 50일차를 앞둔 이번 전쟁이 정전 또는 휴전보다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망했다. “러시아가 최근 병력을 동부 돈바스에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쟁을 개시했던 만큼 다른 지역에도 눈독을 들여 병력을 증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수도 키이우에서의 철군을 이끌어낸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관련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국민들이 보여주는 용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기·군수물자·구호품 등의 물적지원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인들과 연대하고 사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변함없는 관심을 호소했다.

그는 나토 차원에서 이번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나토가 직접 우크라이나에 전투병을 보내거나 전투기를 띄울 일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나토는 전쟁 발발 전부터 우크라이나 병력 수만명을 훈련시켰고, 개별 회원국 차원의 무기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나토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자신의 눈앞에서 나토를 덜 보게 될 것을 기대했겠지만, 정반대로 그는 나토를 더 많이 보게 됐다”고도 말했다. 바우어 위원장은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국제법 질서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자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침해 행위”라며 향후 나토 차원의 제재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의 위협을 절감한 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대러 관계 악화를 우려해 신중했던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문제가 최근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서 논의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바우어 위원장은 “아직 스웨덴·핀란드 측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시작한 것은 없지만, 이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나토는 정치·군사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고 회원국들이 동의하면 어느 나라든 가입할 수 있다”며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그는 “나토는 기본적으로 유럽·북미·대서양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안보 동맹체이지만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태평양 국가들도 중요한 안보 파트너”라고 했다. 특히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사정거리에는 나토 권역도 포함된다”며 “나토는 북핵 문제를 중요한 안보 위협으로 여기고 있어 한국과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