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이 ‘개그계의 대부’라고 부르는 임하룡.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 출연하는 배우 임하룡은 “개콘에서 하차하고 나서 내 활동 영역은 더 넓어졌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여전히 “이 나이에 내가 하리?”라며 쑥스럽게 머리를 빗어 넘길 것만 같았다. 임하룡(70)은 개그맨 출신이지만 영화, 드라마, 뮤지컬, 예능 등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4월 2일부터는 김해·대구·창원·거제·밀양을 거쳐 서울로 올라오는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 출연한다.

“호칭요? 그냥 ‘젊은 오빠’라고 하세요. 하하. 유머1번지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코너에서 제가 만든 말이에요.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임하룡은 밤무대 MC를 하다 1980년대 초부터 개그맨으로 살았다. 데뷔작은 1976년 극단 가교가 만든 뮤지컬 ‘포기와 베스’. 지난 23일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솔직히 아직도 노래에는 자신이 없다”며 “2001년에 개그콘서트를 떠나 영화·드라마에 발을 담갔고 공연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이후 2년 만”이라고 말했다.

‘불효자는 웁니다’는 199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한 악극 사상 최고 흥행작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15년 동안 제사를 지낸 아들이 어머니와 상봉하는 이야기. “생전에 부모에게 잘하라며 눈물을 쏙 빼는 악극”이라고 했다. 양금석·강효성·정운택·임호 등이 출연하며 임하룡은 1인 다역을 맡는다.

임하룡 주연의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전국 순회 공연 후 서울로 올라온다.

“제가 공연의 시작과 끝을 책임져요. 사회자와 변사(辯士), 의사와 장의사, 찹쌀떡 장수와 시골 아저씨로도 나와요. 손수건을 지참해야 합니다. 요즘 코로나로 힘든 분이 많은데, 위로가 될 거예요. 1막에서는 실컷 웃고 2막에선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개그맨 최초로 연예대상을 2회 받은 임하룡은 도전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개그콘서트에서 하차 통보를 받은 직후에는 배우로 건너갔다.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 ‘범죄의 재구성’ ‘굿모닝 프레지던트’ 등에 출연했고 장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2005)로 청룡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최근에 화가로도 데뷔한 임하룡은 “인생을 돌아보면 ‘소풍’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며 “이왕 태어났으니 즐겁게 살다 가고 싶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나는 왜 태어났나’ ‘눈은 왜 이렇게 작고 못생겼나’ ‘공부는 왜 못하나’ 등 고민이 많았지만 학교에 갈 땐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설렜어요.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 좋아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도할 생각이에요. 아마도 그게 덜 늙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임하룡은 이 영화 '웰컴 투 동막골'로 청룡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는 "시상식날이 아버지 기일이라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을 수 없었다"고 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가 1만여개다. 그는 “장단점이 있는데 단점은 경조사 연락이 너무 많이 온다는 것”이라며 “농담”이라고 했다. “장점은 외롭지 않아요. 안부 전화와 문자 등을 자주 받으니 심심할 틈이 없어요.”

남을 웃겨야 하는 사람의 비애는 뭘까. “슬픔이 닥쳤을 때 슬퍼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선배 연극배우의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고 장례식장에 갔어요. 그런데 선배가 안 보였습니다. 공연 중이라는 거예요. 상중(喪中)이지만 슬픔을 감내하며 무대에 오른 겁니다. 개그맨도 그래요.”

임하룡은 제대 후 서울 국립정신병원에서 아르바이트로 사이코드라마를 하면서 즉흥 연기술을 익혔다고 했다. 개그맨 시절에도 심형래 등 동료들을 순발력 있게 받쳐주곤 했다. 배구로 치면 공격수에게 토스하는 세터와 같았다. TV에서 코미디 프로가 사실상 사라진 데 대한 생각을 묻자 ‘젊은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없어진 건 아니고 여러 분야로 녹아 들어갔어요. 영화로 드라마로 예능으로 악극으로. 저는 후배들에게 ‘오히려 너희가 활동할 터전이 더 넓어졌다’고 말합니다. 희망을 갖고 실력을 갈고닦으면 코미디 프로가 부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임하룡이 그린 그림에는 이렇게 눈동자가 많이 담겨 있다. "시선을 주고 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그런지 사물이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임하룡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