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사과나무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소년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네도 타고 사과를 먹으며 자랐다. 이윽고 어른이 돼서 오랜만에 찾아온 소년에게 나무는 가지부터 몸통까지 모든 것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루터기만 남은 마지막 순간조차 인생의 황혼 녘에 접어든 소년의 쉼터가 되어준다. 조건 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아름다운 그림과 짧은 글에 담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 이 책과 작가 셸 실버스타인(1930~1999)을 기념하는 우표가 올해 미국에서 발행된다고 미 연방우정청(USPS)이 최근 발표했다. USPS가 공개한 도안은 어린 소년이 빨간 사과를 받는 표지 그림과 함께 책 제목과 실버스타인 이름을 넣었다. 우표는 화폐·동전과 함께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물건이다.
이 때문에 우표에 나온다는 것은 삶과 업적이 국민·국가적 차원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USPS의 우표 등장인물 선정 과정은 매우 엄격하고 깐깐하다. 1957년 설립된 시민우표자문위원회에서 우표 인물로 제안받은 인물들을 심사한 뒤 선별해 연방우정청장에게 추천하는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 해마다 우표 등장인물 추천 건수가 3만여 건에 이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69세에 별세한 실버스타인이 23년 만에 우표 속 인물로 돌아오면서 그의 삶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작가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는 시인이면서 작곡과 가창을 겸하는 싱어송라이터, 배우, 영화 대본 작가, 만화가 등으로 활약한 팔방미인이었다. 6·25에 참전해 한국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특히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보여준 간결하면서도 위트 있는 필체로 많은 한 컷 만화를 그렸는데, 그가 한 컷 만화를 기고한 매체 중에는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와 군사 전문지 성조지도 있다. 플레이보이는 세계적 명성을 얻기 전인 1956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98년까지 만화를 기고한 오랜 필진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가 두 번째로 발표한 동화다. 1964년 출판되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지만, 책이 나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출간한 그해 시카고 트리뷴 인터뷰에서 “읽어본 사람들은 ‘정말 좋다’ ‘눈물 난다’고 칭찬하면서도 너무 짧다거나, 결말이 매우 슬프다거나, 독자층이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서 어중간해 인기가 없을 것 같다는 등의 이유로 출판을 꺼렸다”고 했다.
완성된 지 4년이 지나도록 출판사를 찾지 못했던 작품을 알아본 것은 전설적 어린이·청소년 책 편집자인 하퍼앤드로(현 하퍼콜린스) 출판사의 어설라 노드스톰. 노드스톰은 실버스타인에게 “할아버지가 된 소년과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가 함께 있는 쓸쓸하고 슬픈 결말은 꼭 유지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실버스타인의 작품은 47국에서 독자와 만났다. 세상에 없지만 작품 활동은 진행형이다. 그가 세상을 뜨고 6년 뒤인 2005년 단어의 알파벳 철자를 뒤바꾸는 말장난으로 가득한 시집 ‘러니 배빗(Runny Babbit·Bunny Rabbit의 의도적 오기)’을 사후 출간했다. 2011년에는 미공개 시와 그림 140여 편을 묶은 시화집 ‘에브리싱 온 잇’이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