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이 거침없이 진격해온 북베트남군에 함락될 때 남베트남 해병대 장교 가족을 태운 미군 헬기가 항공모함 행콕함 위에 내려앉았다. 이 가족의 막내였던 아홉 살 소년은 훗날 미군 역사상 첫 베트남계 육군 장성이 됐다. 주일 미 육군 사령관 비엣 루옹(55) 소장이다. 루옹 소장이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기념의 달을 맞아 최근 페이스북 라이브 인터뷰에 출연해 탈출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단란한 가정에서 귀여움 받고 자란 막내아들이었다. 누나 넷은 명문 대학과 고교에 다니던 재원이었다.
북베트남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면서 남베트남인 사이에는 불안과 공포가 확산했다. 아버지는 “적과 싸워야 한다”며 전선(戰線)으로 복귀하려 했으나 어머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극구 반대했다. 사이공 함락 며칠 전 가족 회의가 소집됐다. 아버지는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긴 어려워졌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며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가족들은 사이공 공항으로 움직였다. 활주로에 도착했을 때 공산 정권을 피해 남베트남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아버지는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걱정할 것 없다”며 안심시켰지만, 잠시 뒤 공항 부근까지 장악한 북베트남의 공격이 시작됐고, 귀를 찢는 듯한 포성이 이어졌고, 하늘에서는 적기들이 포탄을 퍼부었다. 가족 모두가 천주교 신자였던 루옹은 두려움에 떨면서 성모 마리아 기도를 반복했다. 그는 “생지옥과 같은 풍경이었고, 나는 두려움에 죽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그날 경험으로 얻은 (정신적) 상처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탈출 당시 긴박한 상황을 회고하며 여러 차례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당시 부모는 가족 전체가 움직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루옹과 그의 누이 한 명만 미국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족 전체가 미국 헬기에 탑승하는 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헬기에서 내려왔을 때 아버지가 한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우리는 미 항공모함에 왔어. 이제 누구도 널 해칠 수 없다는 뜻이란다”고 말했다.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페이스북 인터뷰의 사회는 보트피플(베트남 난민) 출신 부모를 둔 미 육군 피트 응우엔 소령이었다. 그는 “오늘 사령관님이 해주신 얘기랑 부모님께서 들려주신 얘기가 정말 비슷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