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8000만 난민을 돌보는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에 지난 2월 23일 “가장 필요한 곳에 써달라”며 성금이 답지했다. 후원자 이름은 ‘경록절’. 같은 날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라이브 공연장들을 돕기 위한 비대면 릴레이 콘서트를 주최하는 사단법인 코드에도 ‘캡틴락컴퍼니’라는 이름으로 후원금이 전달됐다. 이름은 다르지만 동일 인물, 국민 애창곡 ‘말달리자’를 부른 밴드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44)이다. 매년 2월 11일 그의 생일을 맞아 열리는 잔치 겸 라이브 콘서트가 ‘경록절’, 그가 차린 음악기획사가 ‘캡틴락컴퍼니’다.
‘경록절’은 인디음악계의 마당발 한경록을 구심점으로 음악인과 팬이 격의 없이 어우러지는 무료 공연으로 사랑받았다. 해를 거듭하면서 김수철·김창완·최백호·현진영 등 지긋한 선배들도 참여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코로나로 자칫 명맥이 끊길 뻔했던 경록절이 비대면 콘서트로 성공리에 끝나자 기념품 판매 수익 등 일부를 난민들과 공연계에 기부한 것이다. 수화기 너머 한경록의 목소리는 크라잉넛이 ‘말달리자’를 부를 때 관객들 흥을 돋우듯 유쾌했다. “하도 개판으로 살아서 지옥에 갈 것 같아서 까방권(까임방지권의 준말·비난이나 악플을 면제받을 권리)을 획득해야 할 것 같았어요. 하하하. 어려운 환경에서도 축제를 무사히 끝냈다는 감사한 마음에, 어려운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했어요. 우리나라도 6·25 사변 때는 국민 대부분이 난민이었으니까요.”
코로나가 불어닥치면서 올해 ‘경록절’은 취소가 확실시됐다. 하지만, 음악 작업에 알맞게 집을 리모델링하던 그에게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온라인으로 하면 되겠네!” 방향이 잡히니 준비는 수월했다. 무대가 고프고 관중이 그리웠던 동료들이 앞다퉈 출연을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유튜브를 통해 2월 11일 정오부터 83팀이 참여하는 18시간짜리 비대면 콘서트 ’2021 경록절 IN THE HOUSE(이번엔 집에서 놀자)’가 열렸다. 김창완(67)이 직접 축가까지 만들어 불렀고,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베이시스트 글렌 매트록(65)도 참여했으니 세대·국경 초월 음악 페스티벌이었다.
온라인 총 조회 수는 7만3000여회. 댓글창에는 헤드뱅잉 이모티콘이 올라오는 등 뜨겁게 호응했다. 후원금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송출 장비 등을 갖춰야 했기에 제작비가 만만찮게 들었다. 이를 조금이라도 충당하기 위해 만든 티셔츠와 맥주잔, 동네 수제맥줏집 쿠폰 등 굿즈(기념품)를 만들었는데 깔끔하게 완판됐다. “코로나에 맞서 모두가 단결해 작은 승리를 거둔 것 같아 뿌듯했어요.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 함께하고 있잖아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한경록은 2021년 경록절 공연 영상을 파트별로 끊어서 24개로 나눠 유튜브에 차곡차곡 올려놓고 있다. 귀를 찢는 펑크 록, 담담한 어쿠스틱, 신나는 힙합, 감미로운 발라드… 모든 장르가 집합해 어느 때보다 풍성한 생일 차림상이 됐다. “코로나가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우리의 미래를 좀 더 일찍 앞당겨줬다는 불안한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지금의 이 상황은 끝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모두 서로를 격려하면서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