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이 세계 190국에 방영되면서 큰 화제가 됐어요.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K팝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았죠. 한국의 대중가요를 의미하는 K팝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데, 여기서 최초의 한국 대중가요는 어떤 노래였는지 알아볼까요? 물론 길게 올라가면 민요나 판소리를 K팝의 원조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대중가요가 출현한 것도 이미 한 세기가 지났습니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 공연이 열리고 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았어요. /EPA 연합뉴스

한국 최초 여성 성악가의 ‘사(死)의 찬미’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고통스러운 세상)에 /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꼭 100년 전인 1926년, 삶을 비관하는 가사와 구슬픈 선율의 이 노래는 식민지 시절 괴롭게 살아가던 조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가수 윤심덕(1897~1926)이 부른 ‘사(死)의 찬미’였어요. 닛토(日東)축음기주식회사에서 음반으로 발표한 것인데, 노래 가사는 윤심덕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평양 출신 윤심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였습니다. 교회 권사의 딸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을 극복하고 서울에 와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했어요. 교회 성가대에서 특출난 노래 실력으로 인정받았고, 총독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음악학교 사범과를 수료했습니다. 1923년 귀국해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했는데, 온갖 음악회에 독창자로 나설 정도로 인기를 누렸고 극단 토월회 배우로도 활동했어요.

그런데 너무 시대를 앞서간 여성 예술가의 유명세는 혹독했습니다. 온갖 뜬소문과 근거 모를 스캔들이 언론에 오르내렸고 ‘행실이 좋지 않은데 예술가인 척한다더라’ 같은 말들이 퍼졌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악플’에 시달렸던 것이죠. 그는 여동생의 미국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의 음반 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었고, 1926년 오사카에서 ‘사의 찬미’를 녹음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성악가였던 윤심덕입니다. /위키피디아

그해 8월 4일,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에 탔던 윤심덕은 돌연 실종됐습니다. 동갑이자 유부남인 극작가 김우진도 같은 배에서 실종됐어요. 희곡 ‘산돼지’, ‘두덕이 시인의 환멸’ 등을 쓴 김우진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입니다. 사람들은 윤심덕과 김우진 두 사람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한탄해, 함께 바다에 몸을 던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큰 화제가 됐고 ‘사의 찬미’ 음반과 음반을 듣기 위한 축음기 매출이 크게 늘었습니다. 두 사람이 정말 연인 관계였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운 근대 문명을 접하고 실천하려 했던 두 선각자가 극한적 방법으로 유교적 구습에 항거한 것이다. 두 사람의 죽음은 한국 예술계를 10년 이상 후퇴시켰다.”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는 최초의 한국 대중가요로 많이 꼽히는 작품입니다. 당시 가장 많이 알려진 가요이기도 했죠. 하지만 그 곡조는 루마니아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관현악 왈츠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가져다 쓴 거여서 최초의 대중가요로 보기엔 곤란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영화 ‘아리랑’ 광고가 1926년 10월 3일 자 매일신문에 실렸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가 ‘아리랑’은 이후 전국적으로 유명한 민요가 됐어요. /라이브러리

지금도 불리는 ‘이 풍진 세월’ 또는 ‘희망가’

이보다 앞선 1921년에는 박채선과 이류색이라는 두 민요 가수가 ‘이 풍진 세월’이라는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여러 가수들이 이 노래를 ‘이 풍진 세상을’ ‘탕자 자탄가’ 등이라는 제목으로 부르다가, 1930년대 크게 유행하면서 ‘희망가’라는 제목이 붙었죠.

가사는 이렇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사의 찬미’처럼 직설적으로 인생을 비관하지는 않지만, 노래 가사 속 ‘희망’이라는 말과 달리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덧없는 인생에서 부귀와 영화 같은 세속적 성공은 의미가 없으니 더 높은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사색과 철학이 깃든 노래, 나아가 독립을 갈망하는 노래로 해석됩니다. 지금도 옛 트로트 곡으로 꾸준히 불립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노래의 곡조도 1805년 미국의 제레미아 잉갈스가 발표한 찬송가가 원곡이라는 점에서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로는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더구나 이미 1910년 일본에서 ‘새하얀 후지산의 뿌리’라는 같은 곡조의 진혼곡이 나왔었다고 해요.

1931년 2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성악가 안기영의 캐리커처. /조선 뉴스

한국인이 창작한 최초의 대중가요는?

1925년 성악가 안기영이 부른 ‘내 고향을 이별하고’ 역시 최초의 대중가요로 언급되는 작품입니다. 애국 창가집을 보급하는 데 힘썼던 독립운동가 정사인(1882~1958)이 작사·작곡한 창작곡이지만, 대중가요보다는 클래식 음악으로 분류되는 가곡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나중에 북한에서는 ‘사향가’란 노래로 개작돼 ‘김일성이 만든 노래’로 선전되기도 했어요.

‘한국인이 창작한 최초의 대중가요’로 언급되는 작품은 1927년 발표되고 1929년 음반이 나온 이정숙의 ‘낙화유수’입니다. 작사·작곡은 영화감독이자 변사(무성영화에서 영화를 설명하던 사람)였던 김영환이 맡았는데, 같은 제목 무성영화의 주제가였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최초’가 과연 무엇인지 애써 찾고 순위를 매기는 일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1920년대에 유행했던 ‘사의 찬미’ ‘희망가’ ‘내 고향을 이별하고’ ‘낙화유수’ 같은 노래들 모두 K팝의 원조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였던 ‘아리랑’도 1926년에 나왔는데 이후 전국 민요가 됐죠. 이번에 BTS 광화문 공연에 등장한 ‘아리랑’이 바로 이 노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