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일은 ‘신라 금관 도난 사건’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국보인 신라 금관이 도둑맞았다고요? 한국 문화유산 ‘수난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잊힌 도난 사건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건 세 가지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신문을 펼친 도둑 “이 금관이 가짜였다고?”
6·25 전쟁이 끝난 지 채 3년이 되지 않은 1956년 3월 7일, 국립박물관 경주 분관(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의 금관 창고에 도둑이 들었어요. 도둑은 서봉총 출토 금관과 금령총 출토 금관을 감쪽같이 훔쳐 달아났습니다. 서봉총 금관은 높이가 30.7㎝인데요. 나뭇가지 모양 장식 세 개와 사슴뿔 모양 장식 두 개, 봉황 장식이 돋보입니다. 높이 27㎝의 금령총 금관은 나뭇가지 모양 장식을 4단으로 연결하고 가지 끝을 꽃봉오리 모양으로 마무리한 금관이죠.
어떻게 문화유산을 도둑맞을 수 있었던 걸까요? 박물관 수위가 그날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 3시간 동안 금관 창고의 열쇠를 잠그지 않고 외출한 틈을 타 범행이 이뤄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국의 분위기는 좀 묘했습니다. ‘큰일 났다’는 경악보다는 ‘이제 어떡하지’라는 고민에 가까웠던 거예요. 이상하죠?
사정은 이랬습니다.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한국은행이 보관하고 있던 금덩어리들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피란’시켰어요. 이 과정에서 극비리에 신라 금관도 함께 보냈던 것입니다.
1952년 박물관 운영을 위해 금관 모조품을 만들고 보니 너무 잘 만들어 진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조품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은 채 전시했습니다. 만약 모조품이라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그럼 진품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 뻔한데 대답하기 곤란해질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1956년에 도둑맞은 두 금관은 전부 진품이 아닌 모조품이었던 겁니다. 도난 7개월 만에 마침내 범인이 검거됐어요. 경주에 사는 당시 20세 상습 절도범이었는데요. 훔친 금관을 지니고 경주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신문을 사서 보곤 모조품이라는 걸 알고 실망해, 냇가 모래 속에 파묻었다는 거예요. 그동안 홍수로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미국에 가 있던 진짜 금관은 1959년 무사히 돌아왔다고 해요.
한강철교에서 되찾은 고구려 불상
현재 휴전선 남쪽에 있는 고구려의 문화유산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중 국보로 지정된 대표적 유산이 ‘금동 연가(延嘉) 7년명 여래입상’이에요. ‘연가’는 고구려 23대 왕인 안원왕 시대의 연호로, 서기 533년에서 539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불상의 제작 연도는 연가 7년, 즉 539년이 되죠. 희한하게도 1963년에 옛 고구려 땅도 아니었던 경남 의령에서 도로 공사 중 출토됐어요. 높이 16.2㎝ 크기로, 구리로 만든 뒤 금으로 도금한 작품이었습니다.
불상 뒷면에 광배(회화나 조각에서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뒤에 빛을 표현한 것)가 있고, 불상의 얼굴은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신라의 얼굴 무늬 수막새를 ‘신라의 미소’, 국보인 백제의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을 ‘백제의 미소’라고 하는데, 금동 연가 7년명 여래입상을 ‘고구려의 미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귀중한 문화유산인 것이죠.
그런데 출토된 지 4년 뒤인 1967년 10월 24일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 전시 중이던 이 불상이 갑자기 사라졌어요. 불상이 있던 자리에는 누군가 파란색 볼펜으로 쓴 쪽지 한 장이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국장(문화재관리국장·현 국가유산청장)님께 직접 알려라. 세계 신기록을 위해 24시간 안으로 돌려주겠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필적 감정도 했지만 성과가 없었어요. 범인은 대담하게도 문화재관리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훔쳤다”고 말하고 서울 명동의 한 다방에 ‘곧 돌려주겠다’는 쪽지를 남기기도 했어요.
같은 날 밤 11시 5분, 범인은 다시 문화재관리국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금인 줄 알고 훔쳤는데 금도 아니고, 귀중한 물건이란 사실을 신문을 보고 알게 돼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알려 주겠다. 한강철교 제3교각 16번과 17번 침목 받침대 사이에 숨겨 놨으니 와서 찾아 가라.” 국장은 당장 그 장소로 가서 20분 넘게 뒤진 끝에 마침내 11시 40분쯤 불상을 찾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져갔습니다. 30대 남성으로 추정된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죠.
21세기에도 일어난 ‘국보 도둑질’
이 같은 문화유산 도난 사건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일어났습니다. 2003년 5월 15일 오후 10시쯤 충남 공주의 국립공주박물관에 흉기와 전기충격기를 지닌 강도 2명이 침입했습니다. 박물관 당직자를 위협해 결박한 뒤 1층 전시관에 들어가 유리를 부수고 국보인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고려청자 2점, 분청사기 1점을 들고 도망갔습니다.
5월 24일이 돼서야 범인 중 한 명이 체포됐고, 공범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설득해 경기 용인의 한 우유 대리점 화단에 숨겨 놨던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도난품인 고려청자와 분청사기는 호남고속도로 유성IC 부근 숲속에서 회수했어요. 그래도 이 사건을 계기로 국립박물관의 허술했던 보안 수준이 크게 향상될 수 있었습니다.
문화유산 도난 사건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3만 점이 넘는 문화유산이 도둑맞았다는 조사도 있어요. 이를 단속하는 인력이 적다는 지적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더욱 철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고구려 불상 도난 사건 당시 한 경찰 간부가 ‘쇠붙이 하나 없어졌다고 왜 그리 난리들이냐’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사람들의 의식이 최소한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