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까지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보물’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이 모두 6만5000명에 달했다고 하네요. 비슷한 다른 전시의 2배가 넘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회장이 수집한 문화유산과 예술품을 일컫는 ‘이건희 컬렉션’의 첫 해외 순회 전시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했어요.
그런데 이 전시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린 유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법고대(法鼓臺)예요. 불교 의식에 사용되던 북인 ‘법고’의 받침대인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듯한 동물을 형상화했어요. 그런데 왜 관심을 받은 걸까요? 관람객 사이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호랑이 ‘더피’와 닮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인증샷이 쏟아졌다고 해요. 오늘은 법고대와, 여기에 형상화된 동물의 정체를 같이 알아볼까요?
상상 속 동물이던 ‘사자’
이번에 미국에서 전시된 법고대는 19세기 조선 시대 작품입니다. 동물 조각상에 갈기가 표현된 것으로 볼 때 이 동물은 사자로 보인다는 의견이 나와요. 동물은 푸른색으로 채색됐고 그 위에 연꽃 모양 법고 받침이 올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겁니다. “사자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잖아요!”라고 말이죠. 주로 초원에 사는 사자는 숲이 많은 동아시아에서 서식하지 않기 때문에 근대 이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제로 사자를 볼 일은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교 서적 등으로 사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찍부터 나무나 돌로 사자의 모습을 표현하는 일이 많았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물이다 보니 상상 속 동물처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모습과 다르게 묘사됐다고 해요. 512년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와 독도)을 정벌할 때 나무로 만든 사자를 배에 싣고 가 겁을 준 일은 유명하죠. 8세기 작품인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국보로 지정돼 있어요. 국가무형유산인 함남 북청의 ‘북청사자놀음’은 사자 탈을 쓰고 추는 탈춤입니다. 이렇게 전승되는 사자의 모습은 갈기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한반도 온 뒤 뿔이 사라진 해태
그런데 이 동물은 사자가 아니라 ‘해태’일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 중국의 해태상을 닮은 것 같기도 하거든요. 국립중앙박물관은 법고대(법고 받침대)는 대개 사자나 해태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태가 뭘까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동아시아 상상의 동물인데 ‘해치’라고도 읽습니다. 그러니까 식품 업체인 해태제과의 ‘해태’와 서울시의 대표 캐릭터인 ‘해치’는 같은 대상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죠.
해태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고주몽’ 편에서 부여의 ‘동명 설화’가 등장하는 중국 책을 설명했던 걸 기억하는 독자도 있을 거예요. 후한의 사상가 왕충이 쓴 ‘논형’입니다. 이 책에서는 ‘해태는 외뿔이 있는 양(羊)이며 천성적으로 죄 있는 자를 안다’고 했어요. 영어로는 유니콘 라이언(unicorn-lion)이라고도 합니다. 재판을 할 때 해태가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달려가 날카로운 뿔로 들이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 앞에도 해치 석상이 두 개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머리가 둥글둥글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돋보이긴 한데, 해치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뿔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또 공정한 법 집행을 상징하는 해치가 사법과 관련 있는 건물이 아니라 왕궁 정문에 있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는 겁니다.(김언종 논문 ‘해태고’) 어떻게 된 걸까요?
이 미스터리에 대해선 크게 세 가지 의견이 나와 있어요. ①해태가 맞다. 다만 법 집행의 상징이었던 해태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수문장(성문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뿔도 사라져 머리가 둥글둥글하게 순화됐다. ②해태가 맞다. 광화문 해태상의 머리 부분을 보면 나선형 무늬가 보이는데, 이것이 뿔을 2차원적으로 표현한 것이거나 뿔이 있던 자국이다. ③해태가 아니다. 다른 동물인데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광화문 앞 해태의 정체는 ‘사자’일 수도
③번 의견대로 그 동물이 해태나 해치가 아니라면, 다시 말해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라면, 도대체 그 동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기린이란 의견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기린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상상의 동물’이던 기린을 가리키는 거죠. 옛 문헌 등을 찾아보면,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목이 약간 길고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해요.
광화문 앞 해태는 상상의 동물인 기린 중에서도 뿔이 없는 종류인 ‘도불’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도불은 ‘사악한 기운의 범접을 막고 상서로운 기운을 불러온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어요. 불의 기운을 누르려고 해태상을 세웠다는 속설과도 들어맞는다는 겁니다. 또는 해태가 아니라 몸에 원 무늬를 새긴 사자라는 의견도 있어요.
이를 모두 종합해보면 광화문 앞 해태(해치)는 ‘뿔 있는 해태’일 수도, ‘뿔 없는 해태’일 수도, ‘기린의 일종인 도불’일 수도, 아니면 ‘사자’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럼 미국에 갔던 법고대 짐승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자처럼 보이는 해태일 수도, 해태처럼 보이는 사자일 수도 있는 거죠. 뭐가 됐든 분명한 건 있어요. 무서운 짐승이라기보다는 매우 친숙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형상화됐다는 점이에요. 요즘 해외 관람객은 사자나 호랑이를 이처럼 해학적으로 표현한 한국 전통 미술에 흥미를 느끼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