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프리카 케냐에서 54살로 생을 마감한 수컷 코끼리 ‘크레이그’의 소식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어요. 크레이그는 생전에 코만큼 길어 보이는 엄니(상아)를 갖고 있었는데, 걸어다닐 때 바닥에 끌린 듯 엄니 곳곳에 흙이 묻어 있었답니다. 외신들은 이 코끼리를 ‘수퍼 터스커(super tusker)’라고 소개하는데요, ‘터스커’는 코끼리·멧돼지·바다코끼리처럼 입 밖으로 기다랗게 자라는 엄니를 가진 포유동물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수퍼’까지 붙으니 어마어마한 엄니를 가졌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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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암수 모두 엄니가 있고, 수컷의 엄니가 암컷보다 훨씬 길죠. 동·남아프리카에 사는 수컷 코끼리 일부는 한눈에 봐도 두드러지게 거대한 엄니를 갖고 있어요. 이들을 ‘수퍼 터스커’라고 부른답니다.

과학자들과 야생동물 전문가들이 말하는 ‘수퍼 터스커’의 기준이 있는데요. 한쪽 엄니의 무게가 약 45㎏을 넘는다는 거예요. 다 자란 수컷 코끼리의 코는 2m 정도인데, 수퍼 터스커의 엄니는 코 길이와 맞먹거나 심지어 더 길기도 해요.

수퍼 터스커의 엄니는 양쪽 크기가 다른 경우가 많아요. 이는 코끼리가 식물의 뿌리를 찾아먹거나 물을 마시기 위해 땅속을 엄니로 파헤치는 습성과 관련 있어요. 사람이 왼손잡이·오른손잡이가 있듯이 코끼리도 한쪽 엄니를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덜 쓰는 쪽 엄니가 더 길어지는 거래요.

현재 수퍼 터스커가 나타나는 지역은 케냐의 암보셀리 국립공원과 차보 국립공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루거 국립공원 등인데요. 예로부터 이 지역에 터잡고 살아가는 코끼리 무리 중 일부 수컷을 통해 수퍼 터스커 유전자가 대물림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유독 기다란 엄니가 발달한 데는 강한 후손을 낳으려는 본능도 작용했다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어요. 수컷들은 무리의 서열을 정하거나 짝짓기 철 암컷을 두고 경쟁할 때 엄니를 ‘무기’로도 쓴답니다. 길고 굵은 엄니는 힘 세고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해서 암컷 눈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대요.

하지만 멋진 엄니 때문에 수퍼 터스커 코끼리들은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는 수난을 겪었어요. 그래서 이들이 살아가는 국립공원에서는 개체마다 이름까지 붙여주고 각별히 보호해 왔답니다. ‘크레이그’는 암보셀리 국립공원 일대에 거주하는 마사이족의 각별한 보호를 받아오면서 살아왔대요.

남아공 크루거국립공원에서는 수퍼 터스커로 이름났던 수컷 코끼리 일곱 마리를 서부 영화 ‘황야의 7인’의 영어 원제목에 빗대 ‘매그니피선트 세븐(Magnificent Seven)’이라고 이름 붙여 널리 알렸죠. 이들이 1980년대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 엄니를 따로 모아서 전시 공간을 마련했대요.

이렇게 멋진 ‘수퍼 터스커’ 코끼리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어요. 코끼리들이 상아를 노린 밀렵꾼들에게 희생되는 일이 끊이지 않으면서 엄니가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밀렵꾼들이 많이 활동하는 지역에서는 엄니가 아예 없는 코끼리까지 태어나고 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