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정 지역으로 알려진 경북 울진군 왕피천 유역을 조사한 결과, 박쥐 16종이 사는 것으로 확인됐대요. 멸종 위기종인 토끼박쥐도 포함됐답니다. 우리나라에는 약 28종의 박쥐가 사는데, 토끼박쥐는 독특한 생김새로 단연 눈에 띕니다. 이름처럼 토끼를 연상시키는 기다란 귀를 갖고 있거든요. 영어 이름은 갈색 긴귀 박쥐(brown long-eared bat)입니다. 몸길이는 5㎝이고, 두 날개를 활짝 편 길이는 30㎝로 아담해요.

박쥐는 크게 육식성과 초식성으로 나뉩니다. 밤하늘을 재빠르게 날아다니며 초음파를 쏴서 장애물을 피하거나 먹잇감을 찾아내는 무리가 육식성 박쥐예요. 초음파 대신 시각과 후각에 의존해 과일을 찾아먹는 초식성 박쥐보다 훨씬 덩치가 작죠. 우리나라에 사는 박쥐는 육식성 박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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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토끼박쥐는 육식성 박쥐이면서도 조금 다른 점이 있어요. 토끼박쥐도 대부분의 박쥐와 마찬가지로 야행성이고, 밤에 활동하는 나방을 비롯해 딱정벌레·거미·집게벌레 등이 주된 먹잇감이죠. 그런데 사냥할 때는 초음파를 활용하지 않고 직접 소리를 듣거나 시각을 활용해서 먹잇감을 찾아요. 몸뚱이 크기와 거의 맞먹는 큰 귀를 가진 덕에 곤충이 날개를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대번에 포착할 정도로 뛰어난 청각을 자랑하죠.

토끼박쥐는 아주 솜씨 좋은 사냥꾼이어서 독수리 같은 맹금류처럼 날아가는 곤충을 공중에서 바로 잡기도 하고, 하늘에서 맴돌다가 땅 위를 기어가는 먹잇감을 위에서 채가기도 해요. 그런데 사냥을 하려고 땅을 향해 내려오다가 이를 노리고 있던 고양이 등에게 되레 사냥당하기도 하죠. 날지 않을 때는 귀를 뒤로 말거나, 날개 아래에 숨겨 놓아요.

토끼박쥐는 서쪽으로는 스페인부터 동쪽으로는 일본까지 유라시아 지역에 폭넓게 살고 있어요. 토끼박쥐를 포함한 많은 박쥐가 곰처럼 기온이 떨어져 먹잇감을 구하기 쉽지 않은 계절이 되면 겨울잠에 들죠. 토끼박쥐에게 겨울잠은 단순한 겨울나기가 아니라 순조로운 번식을 위한 준비 기간이랍니다. 토끼박쥐는 수컷의 정자 생성 기능이 최고조에 이르는 8~9월에 짝짓기를 하는데요. 이때가 지나면 수컷의 번식 능력은 급속히 떨어져요. 암컷은 짝짓기를 마치고 임신이 되기도 전에 곧바로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겨울잠을 잔답니다.

암컷 토끼박쥐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정상적으로 먹이 활동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임신에 들어가요. 토끼박쥐가 겨울잠을 자는 동안 아기 씨앗인 수정란도 발달을 멈춘 채 엄마 뱃속에 들어있었던 것이죠. 토끼박쥐의 임신 기간은 60~70일입니다. 겨울잠 기간 동안 임신이 늦춰짐으로써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이 아닌 먹잇감을 구하기 수월한 여름철에 새끼가 태어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임신한 암컷들 수십 마리가 무리를 이뤄 함께 지내면서 보통 한 마리씩 새끼를 낳아 기른답니다. 반면 수컷들은 혼자서 생활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