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버지니아주의 주류 판매점에 침입해 술을 진탕 훔쳐 마시고 뻗은 채 발견된 라쿤이 깜짝 스타가 됐어요. 이 황당한 사건이 두고두고 화제가 되면서 가게에서는 라쿤 이야기에서 착안한 칵테일을 출시했고, 술이 깰 때까지 라쿤을 데리고 있었던 동물보호소에서는 라쿤 굿즈를 만들었는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대요.
호기심이 강하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라쿤은 종종 도시 한복판까지 내려와 사고를 일으키곤 하죠. 깜찍한 외모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라쿤은 미국 전역과 캐나다 남부, 그리고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지역까지 분포해요. 너구리와 비슷한 외모 때문에 ‘미국너구리’라고도 불린답니다.
라쿤은 판다를 연상케 하는 검은 눈두덩과 얼룩무늬 털로 뒤덮인 꼬리를 가지고 있어요. 앞뒤 발에는 길쭉하고 늘씬한 발가락이 다섯 개씩 있고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 있어요. 앞발로 먹잇감을 쥐기도 하고, 나무를 능숙하게 오르기도 한답니다.
아담한 몸집에 친근한 느낌을 주지만 이래 봬도 사자·호랑이·불곰 등과 마찬가지로 식육류(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맹수)에 속한답니다. 개·고양이·곰 등의 공통 조상인 ‘미아키스’라는 원시 식육류에서 3700만년 전쯤 갈라져 나왔대요. 라쿤은 육식동물이 조상이지만, 숲에 살면서 식물도 함께 먹는 잡식성으로 식성을 바꿨답니다. 직접 사냥한 개구리·가재·조개·지렁이·곤충 등을 먹기도 하지만, 포도·사과·딸기·복숭아 같은 과일도 잘 먹어요.
라쿤은 먹을 때 독특한 행동을 한답니다. 근처에 물가가 있으면 앞발에 먹잇감을 쥔 채로 물속에 담그고 열심히 문지르거든요. 암만 봐도 식사 전에 음식을 깨끗하게 씻는 것처럼 보여서 유달리 깔끔을 떠는 동물로도 인식됐죠.
하지만 깨끗하게 먹으려고 씻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라쿤은 도심까지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 찌꺼기를 찾아내기도 하고, 자동차에 치여 죽은 다른 동물의 사체까지 먹어요.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앞발의 세밀한 감각을 잃지 않게끔 단련하거나, 먹잇감의 촉감 등을 확인하려는 등의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보고 있어요.
유럽에서 온 이주민이 북아메리카에 정착한 뒤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도시를 세우면서 많은 동물이 서식지를 잃었죠. 하지만 라쿤은 어떤 환경 변화에도 뛰어난 적응력을 무기 삼아 번성하고 있답니다. 집만 보더라도, 원래는 나무 구덩이나 다른 동물이 파놓은 굴에 살았지만 도시에서는 버려진 건물이나 차고·하수구에까지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답니다. 라쿤을 보고 반가워하는 사람이 많지만, 광견병을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대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라쿤에게서 털가죽을 얻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라쿤 고기도 먹었대요. 원주민들은 라쿤이 앞발을 사람처럼 능숙하게 움직이는 점을 눈여겨보고 범상치 않은 동물로 여겼대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장 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디즈니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서도 라쿤은 먹성 좋은 감초 캐릭터로 나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