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립축산과학원

지난 6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의 한 축산 농가 보일러실 창고에 보관 중이던 한우 씨수소 정액 60개가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27일 울주경찰서에 따르면, 전날(5일) 밤까지 창고 질소 통에 인공수정하려고 구매해 놓은 씨수소 정액 300여 개가 냉동 보관돼 있었는데, 이 중 상품성이 좋은 일부가 도난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라진 정액의 시가가 1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품질이 좋은 것들만 사라진 점 등으로 미뤄 축산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의 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한우 씨수소 정액 도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보증하는 씨수소(KPN·Korean Proven bull Number)의 정액은 농협이 운영하는 한우 개량 사업소에서 대부분 공급하는데, 번식 성적이나 비육(肥育·살지게 키우는 일) 성적이 좋은 것들은 웃돈을 수십배 얹어 거래할 만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런 부작용까지 일어나는 것이다.

지난 8일에는 전북 장수군 한 민간 축산 연구소에 도둑이 들어 한우 씨수소 정액 260개를 훔쳐 달아났다. 1주일쯤 뒤 검거된 범인은 30대 가축 인공수정사인 A씨였다. 수정사는 지자체에서 면허를 받아 가축 인공수정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람들로, 전국에 7300여 명(2022년 기준)이 있다.

문제는 농가들이 수정사를 통해 정액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A씨도 훔친 정액 260개 중 60여 개를 이미 주변 농가에 개당 150만원에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가 훔친 정액은 KPN 872, 950, 1314 등 초우량 한우 정액들로, 피해 규모가 1억7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A씨가 훔친 정액은 이른바 ‘수퍼 소’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들이다. 한 축산 농민은 “가장 귀하다는 950번은, 덩치도 크고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은 소가 나올 가능성이 높고 도축했을 때 육질도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이런 소는 일반 소 4~5마리를 키워서 버는 돈만큼 벌 수 있으니 너도나도 좋은 씨를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씨수소 정액은 충남 서산의 ‘한우 개량 사업소(사업소)’에서만 생산·보급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위탁해 무분별한 근친교배와 불량 정자 유통을 막고 있는 것이다. 개인 농가도 검증 절차를 거치면 거래가 가능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가 까다로워 대부분 사업소를 통해 유통된다.

사업소는 1117㏊ 규모 초지·임야에서 국가 보증 씨수소 226두를 키우고 있다. 일주일에 2~3회 정액을 채취해 연간 200~220만개의 냉동 정액을 생산한다. 생산된 정액엔 고유 번호를 붙여 유전 정보 등을 관리한다.

지금 농민들은 정액의 유전정보와 자신들이 키우는 암소의 유전정보를 연결해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사업소는 매달 인터넷 추첨으로 일정량만 판매하고 있다. 빨대 모양 용기에 담아 1개당 3000원~1만원에 파는데, 품질이 좋은 KPN 번호엔 신청자가 몰려 경쟁이 치열하다. 선호도가 높은 KPN 1416은 100대1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질 좋은 정액은 웃돈이 붙어 암거래되고 있다. 당첨 직후 1개당 50만~100만원에 되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농민들 사이에선 “로또 맞았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엔 전문 유통업자도 등장했다. 농가나 수정사를 통해 정액을 확보한 뒤 지역을 옮겨 다니며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경북 지역 한 수정사는 “검증받은 정액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렵다. 농민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울산 울주군의 한 농장주는 “요즘 씨수소 정액 거래 시장은 투기판이나 마찬가지”라며 “사업소가 보급할 때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