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순 부산 남구 한 주택가 골목길에서 차를 몰던 A씨는 갑자기 오른쪽 사이드미러 쪽에서 뭔가 쿵하고 받히는 소리에 황급히 차를 세웠다.

놀란 A씨가 차에서 내리니 노신사 1명이 바닥에 깨진 사기 그릇을 만지며 울고 있었다. 검은색 양복의 상주 차림을 한 남성은 A씨를 향해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겉면엔 ‘사망진단서(화장장)’라고 적혀 있었다.

“부모님 유골함인데”...상복입고 슬피울던 남성의 정체

슬피 울던 남성은 깨진 사기 그릇이 부모님 유골함이라고 했다. 위로금조로 30만 원도 요구했다. 고인의 유골함을 깨뜨렸다는 생각에 등골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놀랐던 A씨는 지갑에 있던 돈을 탈탈 털어 남성에게 건넸다.

사고는 수습했지만 A씨는 남성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주지 않은 사실이 찝찝했다. 나중에 뺑소니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단 생각에 A씨는 경찰에 사고를 신고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남성은 이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운전자들에게 보상금을 뜯어낸 사기꾼 B(60대)씨였다.

B씨의 정체는 3개월간의 끈질긴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당시 A씨 신고를 받은 부산 남부경찰서 교통사고팀 수사관은 사건 내용을 듣고 수상한 낌새를 직감했다. 얼마 전에도 똑같은 내용의 사고가 한건 접수됐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경찰서에도 비슷한 사건이 접수된 것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모두 11건이 있는 것을 찾아낸 수사관은 B씨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남성은 주로 CCTV가 없는 곳만 돌아다녀 소재 파악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피해자 1명이 이 남성을 길에서 우연히 목격하고 신고했고, 경찰은 CCTV를 수사해 남성의 덜미를 잡았다.

경찰은 B씨가 지난해 5월부터 이달 7일까지 11명에게 109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B씨가 일명 ‘손목치기’라고 불리는 수법으로 사이드미러에 손목을 부딪쳐 소액의 합의금을 뜯어내다가 검거돼 처벌 전력도 몇차례 있는 것을 확인했다.

B씨는 ‘유골함 사기’를 위해 실리콘으로 자체 제작한 보호장치를 오른팔에 끼고 범행 연습도 사전에 한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결국 지난 26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유사한 수법으로 피해를 본 운전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B씨가 매일 오전 5시부터 집에서 나가 시내를 돌아다녔다”면서 “피해자들이 유골함을 깨뜨렸다는 미안함에 신고를 거의 하지 않는데 피해를 보신 분이 있다면 남부서 교통사고 수사팀으로 연락을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된 60대 B씨가 범행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장면. /부산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