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경남에서는 행정 통합이 최대 화두로 부상했다. 부산시와 경남도는 “연내 주민투표를 거쳐 2028년 행정 통합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방정부 수준의 자치권·재정권을 보장해야 제대로 된 통합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부산·경남만 뒤처질 수 있다”며 이번 지방선거 때 통합 단체장을 뽑자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16일 경남도에 따르면 부산·경남은 지난달 28일 연내 주민투표, 2027년 완전한 자치권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거쳐 2028년 총선에서 통합 단체장을 선출한다는 단계별 로드맵을 공식화했다. 광역 행정 통합을 추진하는 다른 지역에서는 오는 6·3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선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신중론’이다.
특히 부산·경남은 주민투표로 통합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중앙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권한을 이양받아 ‘실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방선거라는 시간에 쫓기기보다는 제대로 된 권한을 이양받아 통합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부산·경남의 이 같은 독자 행보의 배경에는 ‘마창진(마산·창원·진해) 통합’의 학습 효과가 있다. 당시 마창진 통합은 ‘먼저 통합하면 인센티브 제공’을 내건 정부에, 지역 정치권이 호응하면서 추진됐다. 주민 투표는 거치지 않았고, 3개 지역의 시의회 의견만 듣고 통합이 결정됐다. 정부가 약속한 재정 인센티브 2444억원 중 실제 통합 창원시에 지급된 건 1906억원에 그쳤다. 당시 마산시에 통합 청사를 둔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2010년 마창진 통합으로 출범한 통합 창원시의 초대 시장을 지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마창진 통합이) 주민투표 없이 의회 의견 청취만으로 성급하게 통합이 진행된 결과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사 위치와 명칭 등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과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며 “한시적 재정 인센티브보다 통합 후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비용이 훨씬 클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주민투표를 통한 정당성 확보가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부산·경남은 정부가 밝힌 4년간 최대 20조원 지원안이 “일회성 유인책”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보다 구체적이고 항구적인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경남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자주재정권 확보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재 8대2에서 6대4로 지방세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 내 발생하는 양도소득세 100%, 법인세 30%, 부가가치세 5% 등을 지방세로 전환하는 내용을 ‘부산경남특별법’에 담았다. 이를 통해 연간 약 7조7000억원의 재원을 항구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권과 함께 통합 자체단체의 조직·인사 자율권의 강화와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부산·경남의 공통된 입장이다.
부산·경남 행정통합이 더딘 데는 지방선거라는 빅 이벤트 앞에서 정치적 셈법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부산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원하는 행정통합은 연방제 수준의 완전한 자치권이 핵심인데, 현 정부안대로 추진하면 별다른 성과 없는 통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며 “박 시장이 올해 지방선거에서 3선 도전에 나서는 만큼 이재명 정부의 지방선거 전략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정치적인 스탠스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남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소속인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재선 출마를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재선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경남도지사 유력 후보로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부산과 경남에서 행정 통합과 관련해 연일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0일엔 경남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 통합을 2년 늦추면, 20년 이상 뒤처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민투표 대신 대규모 여론조사를 통해 통합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11일엔 부산을 찾아 “파격적인 지원책이 나왔을 때 심폐 소생술을 하며 급한 불을 끄면서 행정 통합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13일에도 국립창원대학교에서 마련된 초청 강연에서 행정 통합 이야기를 꺼냈다. 국민의힘 경남도당에서는 이 같은 김 위원장의 행보에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행정 통합을 두고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유력한 경남도지사 후보들이 ‘완성도’(박완수)와 ‘속도전’(김경수)으로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는 반응이다.
부산·경남 행정 통합 논의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울산시는 최근 “정부가 재정 분권, 지역 개발권 등 권한을 이양해 주면 행정 통합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에 부산·경남에서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상황에 따라 2028년 울산까지 더한 통합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다만 울산시의 속내는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울산은 부산과 경남에 비해 인구 수, 경제 규모, 국회의원 수 등이 모두 적어 통합할 경우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해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크다. 울산시 한 관계자는 “세 시도가 통합해 광역단체장을 뽑는다면 당연히 인구가 많은 부산이나 경남에서 나오지 않겠느냐”며 “그렇게 되면 그 지역 이익을 먼저 대변하고 우리는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1997년 직할시(현 광역시)로 승격하며 경남도에서 분리됐는데, 다시 돌아가는 것이 맞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정부는 4년간 부울경에 5조를 준다고 하지만 울산에 주는 최대 수혜액은 6000억~7000억밖에 안 될 것”이라며 “순간적인 인센티브에 매몰되면 과거 경상남도 울산 시절로 돌아갈 거다. 수도권만 봐도 경기도 내 성남·수원·용인시 같은 곳들은 울산보다 커가고 있지만, 경기도에 속해 존재감이 적다. 반면 인천시는 제2 도시로 커가고 있다”고 했다.
통합에 대한 지역 주민들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부산진구에 사는 박모씨는 “통합을 하면 분명히 규모의 경제가 커져 부산에는 이익이 될 것”이라며 “다른 지역은 행정 통합한다는데 부산만 빠지면 나중에 혜택을 아예 못 보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반면 하동군에 사는 정모씨는 “통합하면 서부 경남은 더더욱 소외감이 커질 것 같다”며 “보다 명확한 지원 방안이나 지역 균형 발전안이 제시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