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김포 지역에서 7년째 택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종혁씨. 그는 택배노조에게 괴롭힘을 당해 극단 선택을 한 A씨와 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이씨의 요청으로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최원우 기자

요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유독 많이 보인다.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한 끝에 극단 선택을 한 가장(家長), 장사가 안돼 파산하고 극단 선택을 한 자영업자. 모두 극단적 불행에 시달렸기에 그런 선택을 내렸을 것이다. 지난달 말 “(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의) 불법 태업과 업무 방해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경기 김포 택배 대리점 대표 A(40)씨의 이야기는 특히 가슴이 먹먹했다. 노조 괴롭힘의 정황, 막막했던 그의 상황이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아내와 세 아이를 남겨두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 정말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헤아릴 수 없었다.

A씨 유족이 노조 택배기사들에 대한 고소장을 냈던 17일 오전. A씨와 가깝게 지냈다는 이웃 동네 대리점 소장 이종혁(39)씨에게 당시 A씨의 심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와 만난 경기 김포 택배터미널에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택배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한창 바쁜 와중에도 이씨는 반팔티에 츄리닝 복장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가까웠던 지인의 안타까운 죽음은 선뜻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일 수밖에 없는데, 응해준 자체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는 “아직도 마음이 어렵다”면서도 “지금도 다른 택배 대리점 소장들이 겪고 있을 실상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극단 선택을 한 김포 택배대리점주 A씨의 아내가 17일 오전 김포경찰서 앞에서 노조원들을 고소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A씨 통화할 때마다 ‘힘들다’ ‘죽겠다’”

이씨는 A씨가 맡았던 지역 바로 옆 동네에서 7년째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마침 A씨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나이도 1살밖에 차이가 안 나 형 동생처럼 지냈다”고 했다. 술자리도 자주 하고, 휴가를 맞춰서 함께 가족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이씨는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3일 전까지도 통화를 주고 받았다. 이씨는 “A씨는 통화할 때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항상 ‘힘들다’, ‘죽겠다’, ‘미치겠다’ 같은 말들을 했다”고 전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씨의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그는 A씨와 나눴던 통화 내용 일부를 들려줬다.

이씨: 어디세요?

A씨: 배달 중. 힘들어 죽겠다.

이씨: 또 배달 중이야? 아이고, 언제 끝나요?

A씨: 아 몰라. 또 12시(자정) 넘겠지.(8/23)


이씨: 요즘 얘기만 하면 짜증을 내네요.

A씨: 기사들이 오늘부터 반품 거부를 해서 힘드네.

이씨: 반품을 아예 안 해? 형한테 다 이관했어? 어휴 머리 아프네.

이씨: 오늘도 배송 나가?

A씨: 어. 죽겠다.(8/23)


이씨: 6신데?(보통 퇴근 시간)

A씨: (배송해야 할)아파트 몇 개 남았어

이씨: 오랜만에 맥주나 한잔하려고 그랬더니.

A씨: 도와 주든가 그럼.(8/12)

무엇이 그토록 A씨를 힘들게 했을까. 유서에도 언급했 듯, 택배노조로부터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는 이미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이씨는 “그중에서도 가장 A씨를 지치게 한 것은 택배노조의 악의적인 ‘개선 택배’ 배송 거부”라고 했다. 택배 수수료를 책정하는 과정에서 실제 크기나 무게와 다르게 수수료가 책정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한다. 보통은 택배기사가 이런 사실을 대리점에 알리면 요금을 수정해 준다. 하지만 노조 기사들은 조금이라도 수수료가 안 맞는 택배에 ‘개선’이라고 표시하고, 배송을 거부해 터미널 한쪽에 마구잡이로 쌓아뒀다고 한다. 이씨는 “서로 원만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던 관행을 깨고 ‘준법 투쟁’이라는 빌미로 배송을 거부한 것”이라고 했다.

배송 수수료가 제대로 책정되지 않은 택배에 '개선'이라고 표시하고 터미널 한켠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모습이다. /이종혁씨 제공

당시 A씨 대리점 직원 18명 중 12명이 노조 소속이었다. 이들이 하루에 20~30건씩 배송을 떠넘겨도 A씨가 감당해야 할 건수가 매일 수백건씩 산더미처럼 쌓였다. 넓은 지역을 오가면서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운 수준이다. A씨도 처음엔 이를 대신 배송할 인력을 고용하려 했다. 그러자 노조원들이 나서서 새로운 배송 인력들에 대해 “왜 A씨를 도와주느냐”며 훼방을 놨다.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아무도 A씨 대리점 업무를 대신 맡으려고 하지 않았다.

배송 지연으로 인한 고객 항의 전화는 전부 A씨에게 돌렸다. 이씨는 “결국 A씨가 부인과 함께 자정 넘어서까지 배송하러 다녔다. 다 처리하지 못하면 이른 새벽에도 배송했다. 한 손으론 운전대 잡고, 한 손으론 고객 항의로 불이 나는 스마트폰을 잡고 정신없이 살았을 거다. 그런 패턴이 두 달 넘게 갔다. 살이 10kg 넘게 빠지고 눈에 띄게 야위었었다”고 했다.

◇ “내연녀 있었다 모함까지··· 아마 결정적 이유는 인간에 대한 배신감”

이씨는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건 결국 A씨가 손을 들고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도 노조가 끝까지 괴롭혔다는 점”이라고 했다. 앞서 A씨는 노조의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대리점 운영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썼다. 이씨는 “대리점을 넘겨주기 전까지 잠깐 운영하는 동안에도 노조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소장이 아니니까 그냥 A씨 이름을 불러야겠다’ ‘ㅇㅇㅇ씨 당신은 이제 소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는 식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A씨를 대신할 소장을 공개 입찰하는 과정은 보통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면 끝난다고 한다. 그 시간만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 생활을 회복하고 괴로웠던 기억을 묻어둘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극단 선택까지 가게 된 걸까.

이씨는 조심스럽게 “괴롭힘 자체도 있겠지만, A씨가 결정적으로 견디지 못했던 것은 인간적인 배신감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A씨가 사람에 대한 정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A씨는 노조가 생기고 대립각을 세우기 전만 해도 기사들과 서로 호형호제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이씨는 “A씨는 기사들에게 명절 선물 하나를 할 때도 한 명, 한 명 이름을 적어서 선물했다. 코로나 전에는 1년에 한두 번씩 펜션을 잡고 기사들과 가족 동반으로 놀러 갔다”고 했다. 생활고를 호소하는 기사를 위해 다른 기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감을 만들어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보통 다른 대리점들에선 드문 일이라고 한다.

숨진 이씨가 근무한 대리점의 직원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민노총 택배노조 직원들이 비노조원을 집중적으로 괴롭힌 정황도 발견됐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그랬던 사람들이 갑자기 A씨에게 적대적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씨는 “A씨는 노조와 관계가 틀어지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그분들이 설마’하고 믿었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다. 이씨는 “택배노조 기사들은 A씨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적대감을 보였다. 자기들끼리는 독립투쟁하는 마음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기사들은 아침마다 집회하듯 터미널 앞에 모여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A씨의 이름을 외쳐가며 모욕을 가했다고 한다.

단톡방에서는 “바로 X신 만들어줍니다” “뇌가 없나” “참 멍멍이 XX 같네” 등 비아냥과 조롱을 주고받았다. A씨가 비리를 저질렀다, 내연녀가 있다는 식의 악의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런 내용을 유튜브에서 떠들고, 그 링크를 A씨가 있는 단톡방에 공공연히 올리면서 조롱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A씨가 방을 나가려 해도 “한 번만 더 (방을)나가면 파업하겠다”고 협박해 그를 붙잡아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A씨는 대인 기피 수준의 우울 증상을 보였고, 끝내 무너져 내린 것이다. 형제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원수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A씨는 지금껏 살아온 삶이 통째로 부정 당하는 심정을 느낀 게 아니었을까.

A씨가 끝내 극단 선택을 하고 나서도 노조 기사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부 기사들은 A씨가 숨진 당일에도 “내연녀가 있어서 투신했다더라”는 식의 헛소문을 내면서 웃었다고 한다. 이씨는 “답답한 마음에 노조원을 붙잡고 하소연한 적도 있다. A씨가 안 좋게 됐는데 계속해서 이래야 하는 거냐고 했다. 그랬더니 노조원이 ‘당신한테도 똑같이 하고 있는데 아직 안 죽고 있지 않느냐. A씨가 죽은 게 우리 때문이 아니라는 뜻 아니냐’”고 하더라”고 했다. 이씨는 “백번 양보해서 노조가 A씨에 대한 잘못이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할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사법기관을 통해 실제로 문제가 있었다고 확인되면 법으로 정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게 순리 아니냐. 무슨 원한이 그렇게 컸기에, 그렇게까지 ‘A씨 죽이기’를 밀어붙여만 했던 건지 정말 묻고 싶다”고 했다.

경기 김포 택배 터미널에 마련된 A씨의 분향소 모습이다. /뉴시스

◇ “비슷한 일이 지금도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A씨가 겪어야 했던 상황이 이씨에게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이씨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노조도 전보다 몸을 사리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자세는 달라진 게 없다. 이미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고 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대리점에는 기사 40여명 중 25명이 노조 소속이다. 이들은 A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표면상으로는 처우 개선과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노조의 요구 조건을 다 들어주면 대리점을 운영하는 게 아예 불가능해진다. 이들이 원하는 건 결국 나를 내쫓고 대리점을 차지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 상부에서 지시라도 내려오는 건지 조직적이라고 느껴진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들의 노골적인 업무 방해가 계속돼 이씨도 고발장을 접수한 상황이다. 이씨는 “노조원들이 ‘우리라고 대리점 운영 못 하란 법이 있느냐’는 말까지 하더라. 정말 나까지 죽어야 그만두겠다는 건지 가슴이 답답했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긴 하지만,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경기 김포 택배 터미널에서 택배기사가 화물차에서 택배를 내리고 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그는 인터뷰 내내 담담한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안색은 어두워 보였다. 이씨는 “노조의 조직적인 괴롭힘은 비단 A씨나 저만 겪는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 점주가 비슷한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라고 했다. 택배노조에선 “일부 조합원이 A씨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의 글들을 단체 대화방에 올린 사실을 확인했다”면서도 “A씨는 노조원들의 괴롭힘 때문에 숨진 것이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택배노조와 대리점주 간에 갈등이 준법 투쟁과 괴롭힘 어딘가 애매한 영역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여러 사람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씨는 “계속 얘기하자니 A씨와 일을 다시 떠올려야 하니 힘드네요. 어쨌든 저는 어떻게든 버텨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