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병합 계획을 밝힌 미국이 유럽의 반발에 대해 “미국이 지원을 끊는다면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모든 것이 무너질 것”(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라고 했다. 그린란드 병합을 위해 러시아와 전쟁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까지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엄포로 해석됐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22일 긴급정상회의를 소집했다. 미국의 ‘그린란드 관세’에 대한 맞불로 930억 유로(약 160조원) 규모 보복 관세 패키지가 거론된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대서양 동맹의 갈등이 좀처럼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각) 트루스소셜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20년간 덴마크에 ‘그린란드에서 러시아의 위협을 몰아내야 한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서 “이제 때가 됐고 완수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그린란드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베선트 재무장관도 트럼프 지원사격에 나섰다. 베선트는 NBC방송 인터뷰에서 “유럽은 약함을 나타내고 미국은 강함을 보여 준다”며 “대통령은 그린란드가 미국에 편입되지 않고서는 (북극) 안보 강화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러시아나 다른 나라가 그린란드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 전쟁에) 끌려들고 말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은 결국 자신들이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협박성 발언도 이 맥락에서 나왔다. 우크라이나든 그린란드든 미국의 지원 없이 유럽 스스로 지킬수 없다는 얘기다.
베선트는 또 과거 덴마크가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불임 시술을 종용했다며 “미국이 관심을 표명하니 갑자기 그린란드에 관심이 생긴 것이냐”라고도 했다. 이는 덴마크 정부가 1960년대부터 수십 년 동안 그린란드 여성들에게 강제 불임 시술을 한 정책을 의미한다.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의 최대 ‘치부’를 공개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이어지면서 유럽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국방비 증액과 불균형한 무역 협정을 수용하고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문명의 소멸’을 운운한 비아냥도 묵인했지만, 그린란드 문제와 추가 관세 부과는 ‘레드 라인’을 넘은 것이란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달래고 대서양 동맹을 보호하려는 고통스러운 노력이 실패했다는 잔혹한 교훈에 맞닥뜨렸다”고 했다.
EU는 이른바 ‘무역 바주카포’라 불리는 통상 위협 대응조치(ACI)를 도입하는 맞불 작전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대해 외국인 직접 투자, 공공 조달, 서비스 무역 등을 제한하는 조치로 2023년 법제화된 이후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미국의 주요 수출품인 항공기, 자동차, 농산물 등을 대상으로 하는 930억 유로 규모 보복 관세 패키지도 옵션 중 하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유럽 개별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유럽이 하나로 뭉치면 그린란드 이슈에 징벌적 관세를 활용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유럽 일각에서는 역내 미국산 무기 구매 중단, 미군 기지 폐쇄 같은 극단적 조치까지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