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만 서른다섯 명을 배출해 ‘세계 경제학의 메카’로 불려온 미 중서부의 명문 시카고대가 재정난에 직면해 전례 없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22일 시카고대와 학생 신문 시카고머룬에 따르면 대학 본부는 이달 초 심각한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해 운영비 1억달러(약 1392억원) 절감하겠다는 대대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직원 100~150명 해고, 건물 건립 규모 축소, 신규 교수 채용 및 박사과정 지원 감축 등이 담겼다.

경제학의 대가들이 모인 대학이 어쩌다가 경영난에 빠졌을까. 폴 앨리비사토스 시카고대 총장은 “지난 8개월 동안 연방 정책의 변화로 불확실성이 가중돼 학교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 규제로 유학생이 급감하고,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지원 축소로 병원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카고대의 재정난은 고위험 자산 투자에 따른 거액 손실 등 학교 측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스탠퍼드대 학생 신문 스탠퍼드리뷰는 지난 3월 “시카고대가 기부금을 가상 화폐·헤지펀드 등 위험 자산에 투자했다 큰 손실을 봤다”고 보도했다. 대학 측은 가상 화폐로 거액을 날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관련 보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스탠퍼드리뷰는 당시 사안에 정통한 최소 네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시카고대가 2021년을 전후해 기부금 등을 가상 화폐에 투자했다가 가격 폭락으로 수천만달러의 손실을 봤으며, 학교의 채무는 60억달러(약 8조35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손실을 메우기 위해 돈을 받고 인증서를 주는 각종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학비를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 단과대 학장은 재정 위기 타개책으로 챗GPT를 도입해 교육 비용을 절감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불렀다.

1890년 석유 재벌 존 D 록펠러가 설립한 시카고 대학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극비리에 수행한 원자폭탄 개발 작전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과 그 후학들로 이어지는 ‘시카고 학파(신고전학파)’의 본산으로 명성을 떨쳤다.

투자 전문 매체 인베스토피디아는 “시카고대가 배출한 경제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자산 거품과 투기 자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지만, 학교 측은 기부금 투자 포트폴리오에 은밀하게 디지털 자산을 포함시켰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