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과 만화영화를 통해서 지구촌에게 꿈과 행복, 상상과 마법의 세계를 꿈꾸게 해준 월트 디즈니. 하지만 그가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미국이 속한 연합군의 사기 진작과 승전을 위해 자신과 회사의 엔터테인먼트 역량을 총동원했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월트 디즈니의 2차 대전 활동상을 조명한 전시회가 2차대전 종전 75주년을 기념해 열린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월트디즈니 가족 박물관(The Walt Disney Family Museum)에서 다음달 개막해 내년 봄까지 열리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와 제2차 세계대전’이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월트 디즈니는 피노키오, 환타지아, 아기코끼리 덤보, 아기사슴 밤비 등 걸작을 잇따라 발표하며 세계적인 만화영화 제작사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 만화속 세상과는 딴판이었다.
특히 아기코끼리 덤보를 개봉하고 두 달 뒤인 1941년 12월에는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당시 미 육군으로부터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있는 스튜디오 부지를 항공기지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디즈니는 요청을 받아들였고, 만화영화 제작사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대가없이 사기진작에 도움을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일반 만화영화가 아닌 병사들을 위한 정훈교육, 선전, 여흥을 위한 각종 공공영화와 포스터, 책자 등을 만들어낸다. 1980년대까지 TV에 방송됐던 국군 홍보프로그램 ‘배달의 기수’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셈이다. 이 시기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휘장도 1200여개 제작됐다.
디즈니를 상징하는 인기 캐릭터들도 당시 발행된 잡지와 광고물, 우표책 등의 매체를 통한 캠페인에 활용됐다. 이들 캐릭터들을 활용해 연합군에 대한 응원과 지지 뿐 아니라 민간인들에게는 음식자원 재활용과 성실한 납세 등 전시 생활 수칙에 충실해줄 것을 당부했다. 미키, 도널드, 구피 등 친숙한 만화 캐릭터들이 미군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다소 낯선 모습을 안겨주는 면도 있다. 당시 미국의 최대 적국이었던 일본의 수도 도쿄에 40여년뒤 디즈니랜드가 만들어져 이들 캐릭터가 매일마다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영화 제작과 캐릭터 활용 외에 월트 디즈니 자신을 포함한 소속 만화제작자들은 나치에 대항하는 연합군의 활약상과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중남미로 친선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월트 디즈니 측은 2차 대전 활동상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널리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포스터와 휘장, 기록영화 등 550여점이 전시된다.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의 크리스틴 코모로스케 행정국장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2차대전 활동상을 통해 월트 디즈니와 동료들은 군인과 민간인들에게 창의력, 혁신, 그리고 긍정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박물관 측은 “애니메이션 역사 중에서도 특별했던 이 시기,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연합군과 민간인들의 사기를 엄청나게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이번 전시회 큐레이터이기도 한 2차 대전 역사가 켄트 램지는 “당시 디즈니는 우리 삼촌이 속해있던 정찰 부대를 위해 특별히 두 개의 휘장을 선사했다. 불행히도 삼촌은 종전 한 달 전에 유럽에서 적군에 격추돼 전사했지만, 이 전시회는 삼촌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경례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가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도 2차 대전과 인연이 깊다. 이곳은 2차 대전 기간을 비롯해 1846년부터 1994년까지 미군 부대였던 곳으로, 기지 철수 뒤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1897년에 지어진 막사 건물중 한 곳과 1908년 지어진 체육관 겸 매점 건물을 개조해서 지금의 박물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