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을 주렁주렁 단 참전용사도 아니었다. 화려한 경력을 지닌 정치인도 아니었다. 불세출의 스타도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은 베티 레이드 소스킨. 태평양이 보이는 캘리포니아 항구 도시의 2차 대전 유적지에서 방문객들을 상대로 조용하면서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안내하던 문화유산해설사였다. 101세까지 현역으로 근무하며 도저히 깨기 힘든 최고령 국립공원 순찰대원(파크 레인저) 기록을 세운 그가 21일 104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빈민가 출신의 흑인 여성으로 한평생 살아온 그는 여든다섯살에 문화유산해설사로 ‘취업’하며 유명해지면서, 보통사람의 삶의 가치를 널리 알리며 국민 할머니로 사랑받은 인물이다.
소스킨은 1921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대홍수로 쑥대밭이 된 고향을 떠나 외가가 있는 캘리포니아 리치먼드로 이주했다. 고교 졸업 뒤 리치먼드의 군수공장에서 섬로 일했고, 남편과 흑인 음악 음반점을 운영했고, 지방의회 보좌관 등으로 일했다. 남다를 것 없었던 소스킨의 삶은 남들이 황혼녘이라고 여기는 나이대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리치먼드는 미국의 2차 세계 대전 참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20대 남성들이 전쟁터에 간 사이, 또래 여성들은 군수품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들을 먹여살렸다. 그 여성들을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라 부른다. 당시 시대상을 담아 1942년 발표된 동명의 팝송이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후에 이 여성들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 리벳공 로지 2차대전 국립역사공원’이 세워졌다. 2000년대 초 국립공원관리청(NPS)과 리치먼드시가 리벳공 로지 국립공원의 역사 공간 기능을 강화하려고 했다. 이 때 소스킨은 특급 도우미가 됐다. 그는 ‘리벳공 로지’는 아니었지만 또래 여성들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소스킨은 오클랜드 국제공항의 개항 당시 모습과 여성 조종사 어밀리아 에어하트의 비극적 실종 등을 생생히 떠올릴만큼 디테일들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의 구술을 통해 동료 리벳공 로지들의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이 속속 발굴됐다. NPS는 이 비범한 할머니를 구성원으로 스카우트했다.
소스킨은 여든네 살이던 2005년 임시직 문화유산해설사 고용됐다. 아흔 살에는 완전한 정규직이 돼 파크 레인저로 방문자센터에서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시절을 살아낸 할머니 문화유산해설사의 정겨운 해설이 금세 입소문을 탔다. 2013년 그는 캘리포니아를 넘어 미 전역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여야 갈등으로 연방정부 셧다운을 겪고 있었는데 ‘셧다운의 직격탄을 맞은 최고령 정부 직원’으로 그가 언론 인터뷰에 잇따라 등장했다.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겪은 일들을 방문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그의 말만큼 셧다운 해소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 방’이 없었다.
2015년 NPS를 대표해 백악관 성탄절 트리 점등식에 참석한 소스킨은 제복을 입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소스킨은 2016년 고향 뉴올리언스 2차대전 기념관에서 훈장을 받았다. 2019년엔 리벳공 로지 국립역사공원 조성에 그가 공헌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허비할 시간이 없다: 베티 레이드 소스킨의 긴급 임무’가 공개됐다. 2019년 뇌졸중 치료를 받은 소스킨은 코로나 창궐시기에도 주 1회 리벳공 로지들의 삶을 들려주는 비대면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21년 9월 NPS는 현역 파크 레인저로 100살이 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소스킨의 생일을 거국적으로 축하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2022년 4월 101세로 현역에서 물러날 때는 지역사회와 NPS가 준비한 성대한 은퇴식이 열렸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보도한 소스킨의 부음 기사에서 “그녀는 여든 다섯살에 국립공원 문화유산해설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공원 방문객들에게 2차 대전 당시 묵묵히 헌신한 여성과 유색인종의 삶에 대해서 교육했다”며 “그 여성과 유색인종 중에는 그 자신도 포함돼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