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단식월 라마단의 첫날이던 지난달 20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집회 시설 이맘 호메이니 후세이니야.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예임을 상징하는 검은 터번을 두른 알리 하메네이(87) 최고지도자가 군중 환호 속에 등장해 연단에 올랐다. 최대 규모 반정부 시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군사적 압박 속에서도 끄떡없음을 과시하려는 행보였다. 그러나 여드레 뒤 하메네이는 테헤란 거처를 겨냥한 미군의 공습으로 폭사하면서 37년 치세가 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대통령 시절 군복 입은 하메네이 1981년 대통령 당선 당시의 하메네이. 당선 4개월 전 암살 미수 사건을 겪은 그는 이후 군복 차림으로 전선을 자주 시찰했다. /AP 연합뉴스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제2의 도시 마슈하드에서 가난한 이슬람 신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란의 주류 민족인 페르시아계가 아닌 소수 아제르바이잔계였지만, 어린 시절부터 매진한 이슬람 교리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 ‘이슬람 신학 영재’로 주목받았다. 이후 이슬람 시아파 신앙의 중심지로 알려진 곰에서 학생들에게 이슬람 교리를 가르쳤다. 청소년 시절부터 친미·친서방 정책을 실시하는 당시 팔레비 왕정에 반대하는 성직자들의 주장에 영향을 받으며 이란을 샤리아(율법)가 다스리는 나라로 바꾸겠다는 ‘이슬람 혁명 이념’에 심취했다.

하메네이는 이후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합류했고, 왕정의 비밀경찰인 ‘사박’의 감시와 체포·고문·투옥을 버텨내면서 호메이니의 핵심 측근으로 부상했다. 그가 고향 마슈하드의 여러 모스크에서 왕정 전복의 필요성을 전파한 강의 내용은 필사본을 통해 전국으로 퍼지며 대학생들의 ‘의식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9년 왕정이 붕괴되자 하메네이는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최측근으로 권력의 중심에 섰다. 1981년에는 국정 2인자인 대통령이 됐고, 4년 뒤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1989년 대통령 임기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호메이니가 사망하자 고위 성직자들로 구성된 국가운영위원회를 통해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

하메네이는 집권 기간 내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 맞서 “미국에 죽음을”을 외치며 이란을 강성 반미 국가로 바꾸는 데 주력했다. 2002년 반체제 인사들의 폭로로 전모가 드러난 극비리 핵개발 프로젝트도 그가 주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 하타미(1997~2005년 재임), 하산 로하니(2013~2021년 재임) 등 개혁파 대통령들이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거나 온건한 사회 정책을 도입하려다가도 하메네이의 영향력에 막혀 좌절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하메네이는 2009년 강경 보수파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석연찮은 선거 승리, 2022년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20대 여성이 종교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사건 등을 계기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음모”로 몰아가며 유혈 진압을 주도했다. 지난해 12월 이란 화폐 가치 폭락에 따른 생활고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대해서도 하메네이는 똑같은 주장을 펼치며 유혈 진압을 강행했다. 그러나 이 시위가 반세기 동안 누적된 기득권 세력의 실정과 폭정에 분노한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로 번지고, 미국이 ‘레짐 체인지’에 나서면서 하메네이의 몰락을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