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공격 개시 뒤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의 사망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불과 두 달 새에 장기 독재하며 전세계 반미 진영을 이끌던 강성 지도자 두 명을 제거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미군의 공습으로 현장에서 폭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생포·압송된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례보다 더 큰 후폭풍을 불러올 전망이다.
이란 전역에서는 어느 곳을 가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 명의 인물 사진 또는 초상화가 내걸려있다. 한 사람은 1979년 친서방 팔레비왕조를 축출하고 지금의 신정 정권 수립해 1989년 사망할때까지 집권한 초대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이고, 두 번째는 후계자로 지금까지 집권해온 하메네이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는 국민들의 선출로 뽑히는 대통령보다도 위에 있는 권력 1인자다. 최고지도자는 국가지도자선출회의가 선출하며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쳐 절대권력을 갖는다. 여기에 군 통수권과 전쟁 선포권은 물론 대통령 인준과 해임권까지 최고지도자의 손에 있다. 이렇게 절대 권력을 가졌지만 기본적으로는 신을 대리한 성직자이다. 이란을 신정체제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과거 친서방 팔레비 왕정 시절부터 이란이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당시로서는 ‘반정부 인사’였다. 1939년 생으로 올해 87세인 하메네이는 이슬람 시아파 신학자 출신이다. 인종적으로는 다수를 이루는 페르시안계(전체 인구의 61%) 아닌 소수 아제르바이잔계(16%)다.
호라산라자비주 마슈하드 출신인 그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이라크 나자프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이슬람 신학자의 길을 걸었다. 이란의 대표적인 종교 도시인 곰과 마슈하드를 오가며 활동했고, 반정부 인사로 지목되면서 수 차례 투옥됐다. 이슬람 세력의 활동이 탄력을 받던 1978년에는 이슬람문화협회 창립멤버로 정치 전면에 등장했고, 이듬해 호메니이가 주도하는 이슬람혁명위원회 위원으로 참가하며 권력의 전면에 섰다.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집권하던 1979년에는 최고지도자를 보좌하는 최정예 군사조직으로 알려진 혁명수비대 사령관과 국방부 차관을 잇따라 맡았다. 잇딴 요직을 꿰차면서 호메니이의 핵심 측근으로 부상했다. 하메네이는 이후 수도 테헤란에서 열리는 금요기도회를 주관하며 이란이 세속주의 색채를 빼고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의 전환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이후 초대 국회의원, 이슬람 공화당 대표를 거쳐 마침내 1981년(3대)과 1985년(4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앞서 이슬람 공화국 체제 초대 대통령이었던 압돌하산 바니사드르(1980~1981)가 집권세력 내 노선 투쟁 끝에 근본주의 세력에 패배하면서 국회 탄핵으로 물러나고, 후임인 모함마드 알리 라자이가 불과 한 달만에 테러로 사망했지만 하메네이는 임기를 무사히 채우면서 권력을 다졌다.
하메네이는 1989년 사망한 호메이니로부터 ‘최고지도자’ 지위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집권해왔다. 대통령 집권기까지 포함하면 이란 신정 체제의 대부분을 권좌에서 보낸 셈이다. 그의 치하에서 이란은 미국과 강력하게 충돌했다. 이번 공습의 계기가 된 핵개발 역시 하메네이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때 타결된 핵합의가 3년 뒤 트럼프 1기 때 파국을 맞자 우라늄 농축 재개를 명령한 것도 하메네이로 알려져있다.
2014년 전립선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뒤에는 그의 건강과 후계 권력구도가 이슈가 됐지만, 반세기 가까이 권력의 정점에 서있던 그를 대체할만한 후계자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미국의 전면 공습과 뒤이은 트럼프의 하메네이 사망 발표로 호메이니에서 하메네이로 이어져온 신정 체제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