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서 전광석화 같은 군사작전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하며 정권의 종지부를 찍은 지 한 달이 지났다. 마두로 축출은 트럼프가 서반구(미주 대륙)에서 중국·러시아 등 다른 열강 세력을 내쫓고 자국 세력권으로 두겠다는 ‘돈로주의(도널드+먼로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는 지난달 31일 워싱턴 DC의 사교 모임 알팔파클럽 연설에서 “캐나다를 51번째 주(州)로 만들고 싶다. 그린란드는 52번째, 베네수엘라는 53번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미국령처럼 만들고 싶어 하는 야욕이 농담 속에 담겨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포스트 마두로’ 권력 3인방
1999년 우고 차베스 집권 이후 2013년 후임 마두로의 권력 승계로 굳건히 이어지다 무너진 베네수엘라 반미(反美) 좌파 정권의 공백은 일단 미국의 묵인 속에 좌파 정권 수뇌부 인사들이 메우고 있다. 마두로 이후 베네수엘라 권력 지형이 빠르게 ‘신(新)권력 3인방’ 체제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부통령으로 마두로를 보좌하다 덜컥 정권 1인자에 오른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의 친오빠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과 마두로의 복심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이 국정 운영의 핵심 축이다.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반정부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이끄는 야권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마두로 정권 인사 중심으로 임시 정부가 꾸려졌다.
로드리게스 남매와 카베요 등 3인방은 대외적으로는 ‘완벽한 연합’을 내세우며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우선 차베스 집권 후 경색되다 마두로 임기에서 사실상 단절 수준까지 갔던 미국과 베네수엘라 외교 관계가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지난 2일 수도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에서 최근 부임한 로라 도구 미국 대사대리와 만났다. 미국 대사대리의 베네수엘라 부임은 7년 만이다. 도구는 온두라스·니카라과 대사를 지낸 중남미통 외교관으로 앞으로 베네수엘라를 미국 주도 국제 질서에 본격 편입시키는 실무 역할을 하게 된다. 미 국무부는 베네수엘라에 대해 안정화→경제 회복→정치적 전환의 3단계를 통해 친미 국가로 변모시킨다는 구상을 세웠다.
이에 앞서 베네수엘라 국회는 지난달 29일 탄화수소법 개정을 통해 차베스·마두로 시대의 상징이던 석유 국유화 방침을 공식 폐기하고, 석유 산업에 민간 및 외국 자본의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양국은 최대 20억달러(약 2조9000억원) 규모의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로드리게스는 차베스 집권 시기인 1999년 이후 탄압받은 반정부 및 민주화 인사들의 사면 추진 계획도 발표했다. 카베요는 2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11월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정치범 등) 895명이 석방됐다”고 밝혔다. 마두로 정권의 강성 반미·좌파 노선을 추종하던 정권 핵심 인사들이 주군(主君)이 제거되자 빠르게 친미 노선으로 갈아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적으로는 마두로 노선으로 결속 시도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차베스·마두로 정권의 잔재가 여전하다는 평가도 있다. 마두로 지지층을 달래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반미를 외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베네수엘라 특유의 ‘측근 정치’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로드리게스는 지난달 25일 북부 푸에르토 라 크루스에서 열린 석유 노동자 행사에서 “민주적 이견을 위한 공간을 여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치는 대문자 P의 정치,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의미하는 V로 해야 한다”며 “워싱턴이 베네수엘라 정치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비난했다.
로드리게스는 최근 카베요의 딸 다니엘라를 관광 장관으로 임명했다. 2021년부터 국회의장 임기를 이어온 오빠를 지난달 5일 재선임한 데 이어 신권력 3인방 핵심인 카베요의 딸을 요직에 앉힌 것이다. 이 같은 인사는 마두로가 취임 첫해 검찰총장·국회의장을 지낸 실리아 플로레스와 결혼하면서 부부가 권력을 독점한 과거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시정부가 이전 좌파 정부의 모습을 되풀이할 경우 우파·야권 지지층의 반발을 사 새로운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 때문에 ‘포스트 마두로 체제’에 대한 비관적 관측도 적지 않다.
우선 법적 한계가 분명하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대통령 부재 시 임시 대통령 임기를 최대 180일로 규정했기 때문에 ‘기한 만료’가 다가올수록 정권 주도권을 잡으려는 정파 간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임시 체제에 대한 피로감과 불신 누적과 맞물려 ‘진정한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도 커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닥칠 경우 마차도가 본격적으로 세력 규합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마차도는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잇따라 만난 뒤 “로드리게스를 신뢰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며 차기 권력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는 “현 임시 체제는 마두로 체포 후 사태 수습이라는 역할 때문에 잠시 명분이 있는 것이지 결국은 시한부 처지”라며 “마차도가 귀국해 국내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차기 권력 구도는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