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입성하며 정부를 축출한 다음날인 지난달 16일 미 정부기관인 아프가니스탄 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이 140쪽 분량의 보고서를 냈다. 제목은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아프간 재건 20년이 준 교훈’이다. 아프간 재건에 투입되는 미 예산의 투명하고 효과적인 집행을 위해 2008년 설립된 이 기관이 펴내는 사실상의 마지막 보고서다. 미군 주도 연합군에게 쫓겨난 뒤에도 20년을 버틴 탈레반에게 사실상 굴복하고 쫓겨나듯 빠져나간 미국이 그간 진행했던 아프간 재건사업의 문제점과 패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향후 비슷한 상황이 닥칠때를 대비해 작성한 ‘실패 보고서’다. 보고서는 아프간 재건사업과 관련한 수천건의 정부 서류를 분석하고 760여명의 담당자 인터뷰를 통해 작성됐다.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작성됐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서애 유성룡이 쓴 징비록과 성격이 비슷하다. SIGAR는 “여로모로 수난을 겪었던 재건노력을 통해 몇몇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너무 많은 실패를 해버렸다”며 20년 재건이 실패로 귀결된 이유를 일곱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첫번째 교훈:전략상 문제
SIGAR 는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전략적으로 무척 허술했다고 진단했다. 눈앞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 때문에 냉철한 상황 판단과 전략 세우기가 결여됐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희망고문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무부와 국방부 간 비효율적인 업무 부담이다. 재건사업을 총괄 진두지휘해야 하는 국무부는 아프간 재건 사업 전략을 진두지휘할 인적 자원이 부족했다. 이런 인적 자원은 오히려 국방부에 많았는데, 국방부에게 주어진 임무는 대규모 경제·행정 재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현지 상황을 감안하면서 재건을 이끌어야 할 별도의 행정기구를 두지 않은 것도 허술한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다.
두번째 교훈:시한의 문제
미국은 아프간 재건이 기본적으로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실현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시간표를 설정하고 빨리 돈을 쏟아붓는 것만 우선시했다. 이런 선택은 결과적으로 아프간 정부 내 부패를 불러왔고, 다양하게 진행된 재건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SIGAR는 아프간 재건사업이 진행된 미군 주둔기간을 “‘20년간 진행된 단일한 재건기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1년짜리 재건사업이 스무번 이어진 것’이라고 보는게 낫다”고 비판했다. 그만큼 단기적 성과만 눈앞에 둔 비효율적인 재원 투입이 난무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어떤 재건담당 미국 당국자는 실제 실현 가능성보다도 자신의 정치적 선호도에 따라 우선되는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세번째 교훈:지속가능성의 문제
보고서는 또한 미국이 주도한 재건 프로젝트 상당수가 지속가능성이 결여돼있었다고 진단했다. 재건사업은 단기적으로 돕는 성격이 강한 인도주의적 지원과는 다르다. 정부와 시민사회에 필요한 기초인프라를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미국이 진행한 재건사업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그 결과 수십 억 달러의 재건자금이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헛되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이 진행한 재건 프로젝트들은 꾸준한 유용성 같은 질적 요소가 아닌 사업의 숫자나 들어간 돈처럼 양적 요소의 기준으로 평가받았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네번째 교훈:인적 자원의 문제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그간 미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정부 붕괴의 원인을 정부 관료의 부패와 싸울 의지가 없는 군인 탓으로 돌렸지만, 보고서는 아프간 재건에 투입된 미국 사람들에게도 자격 미달자가 상당하다고 자아비판했다. 보고서는 “미 정부는 재건사업의 적시적소에 적절한 인물을 투입하는 능력이 결여됐고, 이는 미국이 실패한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했다. 이런 인적 자원 투입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도 제시됐다. 현지 경찰을 훈련시키기 위해 투입된 국방부 경찰 자문관들은 경찰 업무를 익히기 위해 미국 TV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민간부문 재건팀 관계자들은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등을 통해 대량 양산됐다. 보고서는 재건 담당자들이 때가 되면 주기적으로 교체되면서 업무 숙지 사항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동일한 시행착오가 반복됐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이를 “각 재건 기관들은 해마다 ‘뇌 절제술’을 경험했다”는 혹독한 비유도 했다.
다섯번째 교훈:치안불안의 문제
아프간 재건프로그램이 목적대로 달성되기 위해서는 치안상태가 보장돼야했지만 상황은 이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선거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유권자 등록과 투표는 반군 세력 등의 위협을 받았고 선거일에 투표소를 폐쇄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미군 집권기에도 탈레반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지방 지역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불안한 치안과 불확실성은 아프가니스탄을 세계에서 가장 사업을 하기 어려운 나라 중 한 곳으로 만들었다. 전 민병대원들을 정부군·경으로 육성시키는 프로그램도 차질을 빚었다. 그들이 지역사회로 돌아갈 경우 복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여섯번째 교훈:맥락의 문제
아프간 재건사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전후사정의 맥락을 잘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아프간의 현지 사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보 수집이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러지 못했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심지어 서구식 기술관료모델을 아프간 경제기관에 어설프게 주입시키려고 했다. 아프간 특수부대원들을 훈련시키면서 그들의 눈높이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체계를 동원했다. 나라 전체 의 80~90%가 관습적 체계의 영향을 받는 사회 시스템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일방적으로 서구식 법치체계를 도입하려고 했다. 현지 사정을 이해하거나 눈높이에 맞추지 않고 갈등을 완화한다며 진행된 프로젝트들은 오히려 갈등을 악화시켰고 심지어 반군의 세력 강화에 도움을 줬다.
일곱번째 교훈:감시와 평가의 문제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업을 진행할때는 감시와 평가 과정이 분명히 따라야 한다. 실제로 감시와 비판은 쉽지 않고,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많은 아프가니스탄에선 더욱 그런 측면도 있다. 아프간 재건사업을 진행한 미국의 재건기관들은 충분한 감시와 평가를 하지 않았다. 주기적인 감시와 평가를 하지 않을 경우 일을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갈 가능성은 높아진다. 불행히도 아프가니스탄 재건사업에서는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많은 미국인, 아프간인, 동맹국 관계자들의 목숨이 위험에 처해졌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