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치르는 이란 대선에서 보수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60) 사법부 수장의 당선이 유력시되면서 중동의 앙숙인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가 8년 만에 다시 ‘강대강’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라이시는 최근 국영방송 여론조사에서 55.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지율이 낮은 후보들의 잇단 사퇴로 선거는 라이시와 개혁파 압돌나세르 헴마티 전 중앙은행 총재의 2파전 구도로 재편됐지만 판세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란·이스라엘, 8년만에 강대강 대치하나

앞서 지난 13일에는 반(反) 베냐민 네타냐후 연정 출범으로 보수 강경파 나프탈리 베네트(49) 야미나당 대표가 새 총리가 됐다. 라이시가 당선돼 오는 8월 취임하면 2013년 8월 이후 8년 만에 이란과 이스라엘에 모두 보수 강경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앞서 보수파 이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2005~2013년 집권)과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2009~2021년 집권) 시절 양국은 극렬하게 대립했다. 2012년엔 이란 핵시설에 대한 이스라엘 선제 공격 가능성이 대두될 정도로 격렬히 대립했다.

성직자 출신의 라이시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최측근으로 4년 전에도 보수 진영 후보로 나섰지만 38% 득표율에 그쳐 개혁파 하산 로하니(57%) 현 대통령에 완패했었다. 그러나 로하니 재임 8년이 성과 없이 마무리되면서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2013년 집권한 로하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7월 핵합의(JCPOA)를 타결했고 이듬해 1월 경제 제재가 일부 해제되고 외국 자본 진출로 이어지자 인기가 치솟으며 손쉽게 재선했다.

그러나 2017년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개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는 졸속 합의”라며 2018년 7월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고 원유 금수 등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1월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드론 공습으로 제거하는 등 이란에 지속적으로 타격을 입혔다. 이런 상황에서 난국을 타개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경제난이 이어지자 친(親)개혁 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등을 돌렸고, 강경 보수층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지난 1월 이란이 미국 제재로 동결된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유조선을 나포한 것도 곤경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핵합의 타결 뒤 이란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했던 프랑스 토탈·푸조·르노사는 핵합의 파기 후 가장 먼저 이란을 떠났고, 코로나 대유행으로 경제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며 “로하니 임기 8년은 산산조각 난 약속이라는 유산을 남기고 끝나게 됐다”고 했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상대방을 역내 최고의 위협으로 간주한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점령자로 간주하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지원해왔다. 이스라엘도 대이란 군사 작전을 암암리에 벌여왔다. 지난해 11월 이란의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의 피살 사건도 이스라엘이 배후로 지목됐다.

이 때문에 8년 만에 재현될 가능성이 높은 ‘강대강' 구도가 현재 진행 중인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에 미칠 영향이 관심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핵합의 참여 5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독일)과 함께 이란 핵합의 복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핵합의에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제한 등 추가 조항을 삽입하는 문제를 두고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시는 최근 대선 TV 토론에서 핵합의 복귀와 관련해 “미국의 제재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결력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대강’ 국면이 조성돼도 당장 중동 정세 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스라엘 새 연정에는 아랍계 정당도 참여하고 있어 베네트 총리가 취임 초부터 대이란 강경책을 구사하기 쉽지 않고, 이란도 경제난 해결 등의 당면 문제 때문에 핵합의 복귀 협상에서 미국의 카드를 주시하며 당분간 관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강대강' 국면에서 중국이 중동 정세의 변수로 돌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세로 코너에 몰린 중국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란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 중동·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연대 전선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