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의 이슬람권 국가 수단이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에 이어 세번째로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23일(현지시각) 수단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은 “향후 몇 주안에 두 나라는 농업, 경제, 무역, 항공, 이민 등의 현안에 대한 협력을 위한 양자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교 수립이나 상주 대사관 설치 등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발표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 집무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압달라 함독 수단 총리와 통화하는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단을 자신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세번째 아랍국가로 소개하고 합류하고 싶은 나라가 최소 5개국이 더 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중 하나이길 기대한다"며 구체적인 국가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수단은 그동안 대표적인 인권탄압국가로 알려져왔으나 30년간 장기통치하던 독재자 오마르 하산 아흐마드 알 바시르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친서방 기조로 급격히 기울고 있는 나라다. 이 때문에 올들어 UAE·바레인에 이은 이스라엘의 3번째 국교 정상화 후보군으로도 거론돼왔다.
이날 발표는 대선을 11일 앞두고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좌충우돌 이미지를 탈피하고 국제 문제 해결 중재자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도 활용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수단을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겠다고 발표해 관계 정상화를 위한 사전 조치라는 분석이 나왔다.
수단은 1993년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됐다. 오마르 하산 아흐마드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이 헤즈볼라 등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무장단체를 지원했다고 미국 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알 바시르 대통령은 재임 중 민간인 학살 등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되기도 했다. 그러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되면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의 차관을 받을 수 있게 되고 해외투자도 원활해지게 됐다.
수단은 한반도의 8.6배에 달하는 영토(아프리카 3위)와 4300여만의 인구,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비옥하고 광활한 나일강 유역 농토를 가진 나라다. 무한한 발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랍계 혈통 무슬림의 영향력이 강한 북부와 기독교를 믿는 토착 원주민이 많은 남부간 내전으로 국토가 황폐화되며 정정이 불안했다. 결국 2011년 7월 석유자원이 풍부한 남수단과 분리됐다. 2018년 12월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군부를 기반으로 철권 통치하던 알 바시르 대통령이 퇴진했고, 지난해 8월 민간 주도 과도 정부가 세워졌다.
수단은 남북한 동시수교국이지만 한동안 북한의 아프리카 외교 거점 역할도 했다. 한국보다 8년 빠른 1969년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50년 가까이 북한과 여러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으며, 특히 군사 분야에서의 협력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지난 2017년 북한과의 무역과 군사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는 미국의 대수단 경제제재 해제로 이어졌다. 미국이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대로 수단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하면 북한·이란·시리아 등 세 곳만 남게 된다.
한편 외신들은 관계정상화부터 정식 국교수립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로이터통신은 양국이 초기의 초점을 농업에 맞춰 경제 및 무역관계를 재개하기로 했다면서 익명의 미 고위 당국자를 인용, 공식 외교관계 수립 같은 사안은 나중에 해결될 것이라고 전했다.CNN도 이번 합의로 완전한 외교관계가 수립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수단과 이스라엘의 국교정상화는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탄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해온 아랍권에서 3번째 이탈자가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팔레스타인은 반발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고위 간부 와셀 아부 유세프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도 “팔레스타인인들과 수단인들을 모두 해치는 정치적 죄”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