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1월 4일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극 발생 직후 장면. 이 사건은 양국 관계 파탄의 결정타가 됐다. /미 육군

“1979년 이란에서 권력을 장악한 아야톨라 호메이니 정권의 초기 움직임 중 하나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폭력 점거를 지원한 것이었습니다. 1983년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레바논) 베이루트의 해병대 막사를 폭파해 미군 241명을 살해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이란 공습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표한 영상 메시지에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정권의 도발을 하나하나 짚었다. 이번 공격의 원인이 47년간 거듭된 이란의 적대 행위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가 가장 먼저 언급한 미 대사관 점거는 혁명으로 팔레비 왕정이 무너진 지 7개월 만인 1979년 11월 4일 이란의 과격파 대학생들이 테헤란 미국 대사관에 난입한 사건이다. 미국이 이란 왕족들의 정착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촉발된 이 사건으로 공관원 등 66명이 444일 동안 억류됐다.

미 카터 행정부는 이듬해 4월 특수부대를 투입해 인질 구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수송기와 헬기가 충돌하는 등 작전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인질들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1981년 1월 20일에야 풀려났다. 이 사건은 미국·이란 악연의 뿌리로 통한다.

1983년 10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는 트럭 폭탄 테러로 미 해병대 막사가 무너져 241명이 숨졌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무장 세력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지목됐다.

미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체결한 이란 핵 합의(JCPOA)는 양국의 관계를 되돌릴 기회처럼 보였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대폭 줄이는 대신 미국이 제재를 푸는 구조였다. 그러나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합의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은 제재를 복원했고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합의 이행을 사실상 중단했다.

2020년 1월에는 미군 무인기(드론)가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 인근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공습해 제거했다. 혁명수비대는 닷새 뒤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탄도미사일 12발 이상을 쏘며 보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