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필리핀 대통령의 후임을 뽑는 선거가 9일 실시된다. 1986년 2월 민주화 항쟁(피플파워)으로 축출돼 미국 망명 중 사망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64) 전 상원 의원의 당선 여부가 주목된다. 그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여론조사에서 줄곧 50% 중반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려왔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인권·언론 탄압으로 임기 내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던 두테르테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이번 대선에서는 두테르테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카르피오(43) 부통령 후보와 한 팀을 이루며 두테르테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임했다. 마르코스 주니어와 두테르테카르피오는 ‘독재자 2세들의 결탁’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차기 대통령·부통령 1순위로 떠올랐다.

마르코스가(家)의 연고지인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의 탄탄한 정치적 기반, 과거 국가 주도 경제 성장 시절에 대한 중·장년층의 향수와 두테르테의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열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마르코스 주니어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젊은 층 표심을 붙잡으려 소셜미디어로 활발하게 소통한 것도 인기 상승의 요인으로 꼽힌다. 두테르테는 그동안 마르코스에 대한 명시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필리핀 일간 인콰이어러는 지난 4일 “두테르테 대통령은 간접적으로 마르코스를 지지하고 있다”는 야신토 파라스 대통령 정치 자문의 발언을 전했다.

마르코스 주니어의 상대는 레니 로브레도(57) 현 부통령이다. 여성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임기 내내 두테르테 대통령의 공안 통치를 비판하며 각을 세워왔다. 필리핀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따로 뽑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당·이념이 다른 부통령이 취임할 수 있다. 로브레도는 민주·진보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여론조사에서 20% 중반의 지지율로 마르코스 주니어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막판 반(反)두테르테 표심 결집을 꾀하고 있지만, 마르코스 주니어 대세론을 잡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2016년 부통령 선거에서도 맞붙은 마르코스 주니어와 로브레도는 체급을 키워 대선에서 리턴매치를 벌이게 됐다. 6년 전 선거에서는 선거전 내내 열세였던 로브레도가 예상을 뒤엎고 근소한 표 차로 승리를 거뒀다. 이에 마르코스 주니어가 불복하면서 재검표와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