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 시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알려진 뒤 백악관에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그는 푸틴을 ‘침략자’라고 부르면서 기존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러시아 2위 대형은행 VTB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고 “기술 수출 금지, 푸틴 측근 및 가족 등에 대한 제재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신규 제재는 러시아 재벌들과 기술 분야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2월 24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연합(EU)도 25일 오전 대러시아 후속 제재안을 발표했다. 러시아 금융기업과 방산업체 등 핵심 국영기업의 70%를 겨냥한 패키지 제재를 발동하고, 수출금지를 통해 러시아가 자국의 정유시설을 개량하지 못하도록 하며, 러시아 항공사에 항공기와 장비 판매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러시아 은행의 자국 내 자산 동결과 첨단 기업 금수 조치 등을 골자로 하는 제재안을 발표하면서 “러시아를 세계 경제로부터 조각조각 잘라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경제가 어느 정도 충격을 받는 모습도 나타났다. 지난 24일 러시아 증시는 전날 대비 33%나 폭락하고, 루블화의 달러화 대비 가치는 2년 만에 최대 낙폭(8%)을 기록했다. 그러나 서방 진영의 호언과 달리 침공 직후 즉각 도입된 각종 제재가 실제 러시아를 압박하는 효력을 발휘할지에 대해선 부정적 전망이 적지 않다. 영국 BBC는 “러시아처럼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에 대한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상당 기간 지속돼야 하는데, 이번 조치로 충분할지 의문”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제재 주체인 미국·EU·영국의 전략적 이해가 저마다 다르다는 점을 계산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도이체벨레는 “지난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후 서방이 단행한 대러시아 제재 조치 상당수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며 “이번 미국의 조치는 단지 조금 더 연장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제재 나선 바이든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 시각)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연설을 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느긋한 푸틴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24일 오후(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기업인들과의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푸틴은 서방 측 추가 제재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전격 침공을 개시한 지난 24일 오후 크렘린궁에서 자국 기업인들과 만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단행될 추가 제재의 리스크에 대해서 당연히 사전에 검토하고 대비해왔다”고 말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푸틴은 “러시아는 세계 경제의 일원”이라며 “해외 파트너들은 우리를 세계 경제에서 밀어내려 해선 안 된다”는 경고성 발언도 했다.

서방이 러시아에 치명타를 날릴 ‘한 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실제 실행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바이든의 제재안에는 초강력 제재안으로 거론돼왔던 국제은행간통신협회 (SWIFT) 접속 차단이 빠져 있다”고 했다. 현재 전 세계 200여 국 1만1000여 금융기관이 SWIFT로 돈을 지불하거나 무역대금을 결제하고 있다. 국제 결제 대금의 절반 이상이 이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접근이 차단될 경우 러시아의 해외 자금줄이 고갈 수준으로 묶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란도 지난 2012년 핵개발로 서방과 갈등을 빚었을 때 SWIFT 차단 조치로 경제에 치명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동안 줄곧 서방에 러시아의 SWIFT 접속 차단을 강력하게 요청해왔지만, 사실상 퇴짜를 맞은 상황이 됐다.

바이든은 푸틴 본인에 대한 직접 제재도 “테이블에 있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피해갔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 같은 자세는 자칫 강력한 대러 경제 제재가 11월 중간선거에 악재가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물가가 40년 만에 최고치를 찍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제재 강도에 따라 미국 내 에너지·자재 가격이 치솟을지 모른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이 파병 등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하지 않는 점도 러시아의 야욕을 꺾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 하루 뒤인 25일 가진 대국민연설에서 “우리는 러시아를 상대로 외롭게 남겨져 싸우고 있다”고 말한 것도 기대에 못 미치는 국제사회의 제재 수위와 우방의 군사적 도움 없이 혼자 러시아군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 침공 전부터 우크라이나에 직접 파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다.

☞SWIFT

국제은행간통신협회(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의 약자.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의 국제 금융 거래를 위해 1973년에 설립됐다. 암호화한 특수 메시지를 통해 자금 거래가 이뤄지도록 한다. 외부 공격에 따른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미국과 네덜란드, 스위스 세 곳에 데이터 센터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