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5일(현지 시각) 화상 전화를 통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8월 25일 전화 통화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이날 회담은 양국 모두 서방과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열린 탓에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미국 등을 직접 비난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양국의 튼튼한 동맹 관계를 과시하며 앞으로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서방 세계와 맞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두 정상은 또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서방의 외교적 보이콧에 반대한다고 밝히면서, 올림픽을 계기로 대면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약 1시간 정도 진행된 회담에서 두 정상은 시종일관 친밀함을 과시했다. 러시아 크렘린(대통령궁)이 공개한 1분짜리 영상에서 푸틴 대통령은 “소중한 내 친구 시진핑 주석, 안녕하십니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시 주석이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자 푸틴 대통령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러시아 타스 통신과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서두 발언 직후 비공개로 이어진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중·러 관계야말로 21세기의 국가 간 협력이 어때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고 양국 관계를 추켜세웠다. 이에 시 주석은 “2013년 이후 이번이 우리의 37번째 만남”이라며 “양국은 각자의 내정에 간섭 않으면서, 서로의 이익을 존중하는 진정한 협력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서방에 대한 비판은 우회적이었다. 시 주석은 “국제적으로 어떤 세력은 ‘민주’ ‘인권’이란 간판을 내걸고 중·러 양국 내정에 멋대로 간섭하고, 국제법과 공인된 국제 관계 준칙을 난폭하게 짓밟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우려를 이해하고 러시아의 구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당한 입장을 확고히 지지하고, 어떤 세력이든 대만 문제를 빌려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한다”고 화답했다. 두 나라가 자국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어 외부 간섭이나 압력에 강하게 반발하는 우크라이나·대만 문제 등에서 서로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2개월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관련, 푸틴 대통령은 “올림픽 개막식에 초청해 고맙다”면서 “우리는 스포츠와 올림픽을 정치화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서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등 서방이 선언한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스포츠의 정치화’로 못 박고, 두 나라가 같은 입장임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9월 푸틴 대통령은 주요국 정상 중 처음으로 베이징 올림픽 참석을 선언했다. 크렘린은 “양국 정상이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참석 전에 별도의 정상회담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두 정상의 의기 투합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서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일 푸틴 대통령과의 화상 회담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미국과 유럽 동맹들이 강력한 경제 제재 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지난달 16일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에선 신장 위구르족 박해와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직접 문제 제기를 했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 결집과 국제사회를 통한 압박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주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통해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를 만들고,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서방 국가들에 요청한 것이 대표적이다. 바이든 정부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열면서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초청하지 않았다.
이날 두 정상은 서방에 맞선 양국 간 전략 공조와 협력 확대도 논의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올 들어 이미 여러 분야에서 밀착 중이다. 중국과 러시아군은 지난 8월 중국 서북부 닝샤에서 중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젠(J)-20′ 등 첨단 무기를 동원해 연합 훈련을 했다. 10월에는 양국 함대가 함께 일본 열도를 한 바퀴 돌며 집단 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중국은 또 러시아제 신형 원자로를 적용한 새 원전 4기를 건설하고 있다. 바이칼호 인근의 러시아 가스전과 중국을 잇는 천연가스관이 중국 북부까지 연결됐고, 올해 창장(長江) 아래를 지나는 공사를 하고 있다. 완공되면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상하이까지 공급된다. 양국은 올해 중·러 우호 조약과 탄도미사일 발사 통보 협정을 각각 20년, 10년씩 연장했다. 올 들어 10월까지 중·러 무역액은 1157억달러(약 137조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