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아이브스 AFP=연합뉴스) 지난 13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 영국 콘월 지역의 세인트아이브스 해변에서 G7 정상들의 얼굴 모습을 본뜬 가면을 쓴 환경단체 '멸종저항' 활동가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속열차 테제베로 2시간 30분 이내 도착 가능한 곳의 단거리 국내선 여객기 운항을 금지한다.” 프랑스 하원이 지난 5월 통과시킨 이 법안은 ‘탄소 제로' 문제가 우리 생활에 미칠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 하원 의원 322명은 “비행기는 기차에 비해 승객 1인당 77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취지의 ‘기후변화와의 싸움과 회복력 강화에 관한 법안’ 취지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표를 던졌다.

원래 프랑스 정부의 탄소 제로 관련 자문 위원회는 ‘테제베로 4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지역의 비행기 탑승 금지’를 제안했는데, 항공 업계의 강한 반대로 이같이 절충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상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파리에서 리옹·낭트·보르도 등 지방 거점 도시로 가는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다. 만약 이 법안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면 서울에서 대구에 갈 경우에는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된다.

지난 4월 프랑스 남부의 포도밭에서 농부가 이상 저온 현상으로 말라붙은 포도밭을 살펴보고 있다. 프랑스는 단거리 국내선 비행 여행을 금지하고 주택 에너지 효율을 높이며 단체 급식에 채식 비중을 늘리는 등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AFP 연합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법안은 탄소 제로 정책에서 한 발이라도 앞서가려는 프랑스 정부와 국민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 법안이 채택되면 프랑스인의 라이프 스타일도 바뀌게 된다. 프랑스인들은 추운 겨울에도 가스 히터를 틀고 식당·카페의 야외 좌석에 앉아 있기를 즐기는데, 내년부턴 테라스 좌석에서 난방 기구를 사용할 수 없다. 에너지 효율 등급이 낮은 주택은 2025년부터 열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집을 개조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프랑스는 이 법안이 마련되기 전부터 탄소 제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프랑스 초·중·고는 2019년부터 주 1회 이상 채식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육류 도축과 포장, 유통, 조리까지 고기 소비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는 이유다. 2023년부터 프랑스 전역의 관공서, 공기업, 대학 구내식당은 육류 소비가 낳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채식으로만 구성된 식단을 의무적으로 하나 이상 준비해야 한다.

지난 300년 가까이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비약적 산업 발전을 이뤘던 서구 선진국들은 ‘탈(脫)화석연료’로 태세를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환경 파괴에 따른 코로나 등 치명적 팬데믹의 잦은 발발로 인류를 포함한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정부도 민간 기업도 ‘탄소 제로’에 존폐가 달린 듯 매달린다.

탄소 감축의 글로벌 표준을 이끌고 있는 유럽에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강령이 시민들의 일상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올 1월부터 각 회원국에서 플라스틱세(稅)를 징수 중이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플라스틱 1㎏당 0.8유로(1000원)의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오는 7월부턴 EU 전역에서 빨대, 숟가락, 컵, 면봉, 배달용 포장재 등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이미 일회용 빨대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유럽 각국에서는 항공기 여행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지난 4월 스웨덴 정부는 전국에서 셋째로 큰 스톡홀름의 브롬마 공항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브롬마 공항은 국내선 또는 단거리 노선이 취항하는데, 이 공항의 폐쇄로 탄소 배출이 적은 기차 여행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스웨덴에선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중심으로 여객기 이용을 자제하자는 ‘플뤼그스캄(비행기 여행의 부끄러움이라는 뜻)’ 캠페인이 활발하다. 오스트리아도 지난해 3시간 미만 걸리는 국내선 항공편을 금지했고, 네덜란드 정부는 암스테르담과 벨기에 브뤼셀 간 항공 노선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해오고 있다. 자잘한 크기의 물건 생산·판매를 줄여 불필요한 포장을 막는 방안도 시행된다. 2030년까지 프랑스 수퍼마켓에서는 대용량 물품만 파는 공간을 전체의 20% 이상 확보해야 한다.

지난해 가을 캘리포니아 등 미 서부를 휩쓴 사상 최악의 산불 사태. 기후변화로 나무들이 말라버려 불이 더 잘 붙고, 가뭄과 폭염이 이어지면서 산불이 잦아지고 대형화되고 있다. 올해도 미 남서부에선 기록적 가뭄과 폭염이 이어지며 기후변화에 대한 공포를 부채질하고 있다. /AP 연합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2019년 유엔 회의 참석을 위해 화장실도 없는 무동력 소형 요트로 북대서양을 건너는 2주간의 모험에 나서던 모습. 그는 "비행기를 타지 않음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기후 위기가 실제적인 사안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툰베리 효과'로 유럽 각국이 비행기 여행을 줄이는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AFP 연합
(워싱턴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워싱턴 DC 백악관의 집무실에서 취임 후 첫 업무로 파리 기후변화협약 복귀, 연방 시설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인종 평등 보장 등에 관한 행정명령 3건에 서명하고 있다. 이들 행정명령은 트럼프 시대와 단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됐다.

세계 탄소 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은 유럽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취임식 후 백악관에 들어가 처음 한 일은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었다.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나의 약속을 과소평가 말라”고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은 2035년까지 미국 전력 발전 부문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고, 2050년까지 배출량만큼 탄소를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목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도로·상하수도·전력망 등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인프라 개·보수, 에너지 절약형 빌딩·주택 건설, 전기차 보급에 2조달러(약 2200조원) 규모 투자를 하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안해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특히 현재 미 차량 중 2%에 불과한 전기차 비율을 2030년까지 50%로 끌어올리기 위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전기차 충전소를 50만개 신설하기로 했다. 미 최대 자동차 시장인 캘리포니아주는 2035년 이후 신규 차량 매매는 전기차만 허용하기로 했다. 이미 스쿨버스와 공공기관용 차는 전기차로 교체되고 있다. 이에 맞춰 GM은 내연기관차 생산을 2035년까지 중단하기로 했고, 포드도 2025년까지 승용차·트럭 등 모든 생산 라인에 290억달러를 투자해 ‘전기차 올인’ 전략을 선언했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선 정원사 등으로 일하던 저임금 근로자들이 태양광 패널 설치 기능공 12주 무료 교육을 받고 ‘고소득 기술직’으로 전직하는 붐이 일고 있다. LA 일대 건물·주택에 태양광 발전 개조 공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면서 인력이 부족해서다. 지난해 최악의 산불 사태를 겪고 올해는 기록적 폭염·가뭄으로 신음 중인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는 주다. 캘리포니아는 ’2045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도시 완성'을 목표로 10년 내 모든 경차와 스쿨버스 등을 배출 가스 제로 차량으로 전환하고 2035년부턴 전기차 판매만 허용하기로 했다.

(모하비 AFP=연합뉴스) 폭염과 가뭄이 강타한 미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인근의 14번 고속도로 구간 인근에 건설된 태양광발전소. 바이든 정부와 캘리포니아주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통해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디어본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미시간주 디어본의 포드 공장을 방문해 곧 출시될 신형 전기차 F-150 라이트닝 픽업트럭을 시승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다. 되돌아가는 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