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의 고향으로 알려지며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핀란드 도시 로바니에미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 등이 최근 보도했다.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1년 내내 동화 같은 풍경을 선보이던 이곳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따른 핀란드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으로 군사 도시처럼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로바니에미 인근 로바예르비 훈련자에서 진행된 실사격 훈련 '노던 스트라이크 225' /나토

가디언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로바니에미를 찾았던 유럽 관광객들이 당혹감을 겪은 사연을 소개했다. 스코틀랜드인 도나 코일은 순록 썰매 체험을 즐기던 중 머리 위로 군용기들이 지나간 상황을 떠올리며 “이런 장면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산타클로스 테마공원 내 산타의 동굴집을 찾은 독일 관광객 한나 슈리커는 러시아 침공에 대비해 곳곳에 만들어진 방공호를 보고 “산타의 고향 마을에서조차 유럽이 전쟁 중이라는 현실을 회피할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지난해 11월 로바니에미에서 열린 핀란드군 훈련 참가자들이 참관하러온 알렉산데르 스투브 대통령과 함께 했다. /핀란드 대통령실

로바니에미 일대는 이전부터 군사 요충지의 역할도 해왔다. 로바니에미가 있는 라플란드 지역 인구는 핀란드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하지만, 핀란드·러시아 국경(약 1340㎞)의 4분의 1이 이곳에 집중돼 있다. 로바니에미에서 북동쪽으로 60㎞ 떨어진 로바예르비에는 서유럽 최대 규모의 군 훈련장이 있다. 이곳과 러시아 국경과의 거리는 불과 100㎞다. 군사적 긴장감이 없던 시절엔 잘 눈에 띄지 않았던 로바니에미와 주변 지역의 군사 기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계기로 활성화되는 양상이다.

지난달 핀란드 라플란드 로바니에미 인근 로바예르비 훈련장에서 열린 실사격 훈련 '노던 스트라이크 225' /나토
그래픽=백형선

지난해 11월 미국 주도 나토 동맹군 포술 훈련의 일환으로 로바니에미 훈련장에서 핀란드군 훈련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24’가 알렉산데르 스투브 대통령의 참관하에 실시됐다. 전투복 차림의 스투브 대통령은 무장한 훈련 참가자들이 설원을 이동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지난달에는 로바예르비 훈련장에서 핀란드군 2200명이 참가하고 군 장비 500여 기가 동원된 실사격 훈련 ‘노던 스트라이크 225’가 실시됐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로바니에서 열린 군 훈련을 전투복 차림으로 참관하고 있다. /핀란드 대통령실

이 훈련에는 한국산 천무 다연장로켓의 폴란드 수출형 버전인 ‘호마르-K’가 등장했다. 이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핀란드 주재 나토 동맹국 상주대표들이 핀란드 국방·외무장관과 함께 로바니에미와 로바예르비를 잇따라 방문했다.

이 지역은 러시아와 접경한 나토 동맹국 병력 위주로 구성된 나토 전방지상군의 새로운 거점으로 군사 기능이 더욱 확장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로바니에미와 주변에서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풍경과 삼엄한 군사 요새를 동시에 경험하는 상황이 더욱 빈번해질 전망이다. 가디언은 “이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클로스를 테마로 한 각종 시설이 어린이와 가족 관람객들로 북적이는 동안 근방에서는 핀란드·스웨덴·영국 군인들이 훈련을 진행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