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중동의 레바논에서 탱크로리(석유 수송용 대형 트럭)가 폭발해 최소 28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레바논은 작년 8월 수도 베이루트 항만에서 214명이 숨진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한 이후 1년째 에너지 공급 대란을 겪고 있다.
일간 르몽드와 AFP통신에 따르면, 14일 밤(현지 시각) 레바논 북부 아카르 지방에서 탱크로리 한 대가 폭발해 28명이 숨졌으며, 70여 명이 다쳤다. 숨진 사람들의 시신은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에 타버렸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부상자 중에서는 중화상을 입은 사람이 많아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이 부족한 레바논에서 치료가 어려워 일부 부상자는 해외 이송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레바논 군인들이 사고가 발생한 탱크로리에서 휘발유 배급을 시작하자 인근 주민들이 몰려든 가운데 갑자기 폭발이 발생했다. 구체적인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휘발유를 서로 먼저 가져가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탱크로리가 폭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베이루트 항만 대폭발 이후 이어진 경제 위기로 레바논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화폐가치가 90% 이상 추락했다. 1달러를 손에 쥐려면 2만레바논파운드 이상을 건네야 할 정도다. 이에 따라 에너지 수입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레바논은 중동 국가지만 석유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프랑스 뉴스채널 BFM은 “에너지원 부족으로 레바논의 발전소 가동이 차례로 중단되고 있다”며 “정전이 잦아지는 가운데 전기 공급이 아예 끊길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주유소들이 계속 문을 닫고 있어 주유소마다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대기 중이라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석유 이외에도 수입에 의존하는 생활 필수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리대 가격이 1년 사이 적어도 5배 이상 오르자 레바논 여성들은 신문지·비닐봉지 등을 대용품으로 사용하는 실정이다. 세계은행은 “레바논이 1850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의 불황을 2019년부터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레바논 정치권은 경제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베이루트 항만 대폭발 사고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했지만 정파 간 권력 다툼으로 인해 1년이 지난 지금도 후속 내각이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참사 책임을 지고 하산 디아브 총리가 사임한 이후 3명이 총리 후보로 지명됐지만 아무도 의회 비준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