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정부의 코로나 방역 실패와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이날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의 기능을 정지시켰다고 발표했다. /AP 연합뉴스
25일(현지시각)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코로나 방역 실패와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트위터

2011년 북아프리카·중동에 민주화 바람을 몰고 온 이른바 ‘아랍의 봄’이 시작된 튀니지. 이 나라가 다시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이 총리를 쫓아내고 의회 기능을 정지시켰다. 이 조치로 인해 국민 여론이 찬반으로 나뉘어 격하게 대립 중이다. 튀니지는 북아프리카에서 ‘민주화 모범국’으로 꼽혔지만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10년 전 아랍의 봄을 맞았던 주변의 다른 나라들도 내전(內戰)과 쿠데타 등으로 극심한 불안정 상태를 겪고 있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나온다.

25일 AFP통신에 따르면,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각) 히셈 메시시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의 기능을 정지시켰다고 발표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국가적 위기 시 의회 기능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헌법상 권한을 활용한 조치”라고 했다. 사이에드의 지시로 무장 군인들이 의회 출입을 막았으며, 국회의원들의 면책 특권도 사라졌다.

튀니지에서는 올해 들어 경제난과 코로나 방역 실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됐다. 그러자 위기에 몰린 사이에드 대통령이 총리 해임이라는 강수로 맞섰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튀니지는 권력 집중을 막고자 대통령과 총리에게 권한을 분산한 이원집정부제를 채택, 다른 국가의 대통령보다는 권한이 약한 편이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평범한 법학 교수였다가 제자들의 권유로 2019년 대선에 갑자기 출마해 당선된 인물이다. 무소속인 그는 정치 기반이 없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의회와 갈등을 빚어왔다.

이날 수도 튀니스에는 사이에드의 총리 해임과 의회 정지를 환영하는 인파들이 몰려나왔다. 이들은 ‘제2의 아랍의 봄’이라며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기뻐했다. 하지만 원내 1당인 이슬람계 엔나흐다는 성명서에서 “헌법과 국민과 엔나흐다에 반하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며 비난했다. 극심한 혼란이 예상되자 사이에드는 “누구든 무기에 의존하려고 한다면 군이 총알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프랑스 국제 뉴스 채널 프랑스24는 “사이에드의 조치에 대해 찬반으로 여론이 나뉘면서 튀니지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튀니지는 그동안 아랍의 봄이 시작된 나라로 지명도를 높여왔다. 2010년 12월 무함마드 부아지지라는 26세 청년이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 자살한 것이 도화선이었다. 이 사건으로 실업난과 빈부 격차에 분노하던 튀니지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튀니지 국민이 전국적으로 집결해 결국 24년간 철권 통치해온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주변 국가에서도 도미노처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라 벌어지면서 ‘아랍의 봄’으로 불리게 됐다.

아랍의 봄 이후 튀니지는 2014년 민선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민주화에 앞서 갔다. 2015년에는 민주주의 확립에 기여한 공로로 튀니지의 노동계·산업계·시민사회계·법조계 협의체인 ‘국민 4자 대화 기구’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원집정부제로 인한 대통령과 의회 간 갈등으로 국정이 표류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가중됐다. 튀니지의 코로나 사망자는 1만8600명으로 아프리카에서 남아공 다음으로 둘째로 많다. 35%에 이르는 청년 실업률도 해소될 기미가 없다. 이런 상황에 분노한 이들의 시위가 이어진 끝에 의회 기능 정지 사태를 맞은 것이다.

2011년 아랍의 봄에 따른 몸살을 가장 심하게 앓았던 이집트·리비아·튀니지·예멘·시리아·바레인 6국 중 알 칼리파 국왕의 통치하에 안정을 되찾은 바레인만 제외하고 모두 내전이나 정치적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시리아에서는 민주주의를 달성하기는커녕 권위주의 통치 체제가 강화되며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아랍의 봄을 계기로 30년간 집권한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무함마드 무르시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2013년 국방장관이던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무르시를 축출했다. 이후 엘시시는 반정부 인사 수천 명을 구속하며 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아랍의 봄 시위에도 불구하고 현재 21년째 집권 중인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를 쫓아내지 못했다. 10년째 계속되는 내전으로 약 40만명이 숨졌고, 해외로 피신한 시리아 난민만 680만명에 이른다.

리비아·예멘은 내전으로 얼룩져 있어 민주적인 통합 정부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독재자 카다피를 사살했다. 그러나 2개의 서로 다른 정부가 구성됐으며, 양측이 2014년부터 내전을 벌이다 지난해 유엔의 중재로 가까스로 휴전에 합의했다. 예멘에서도 사우디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이란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자주 교전을 벌이며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