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해 있는 프랑스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18일 파리 시내 6.25전쟁 참전 기념비에 전사자 이름 292명을 새겨넣는 제막식에 참석했다./주프랑스대사관

18일(현지 시각) 파리 4구 센강 변에 있는 프랑스군의 6·25전쟁 참전 기념비. 자크 그리졸레(93)씨를 비롯한 생존 참전 용사 9명이 오랜만에 모였다. 노병들은 저마다 가슴에 무공훈장을 달고 있었다. 이들은 6·25전쟁 당시 전사한 전우들의 이름을 오랜만에 다시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이날 프랑스 국방부가 1950~53년 강원도 일대 전선 등에서 전사한 참전 용사 292명의 이름을 새긴 동판을 참전 기념비에 붙이는 제막식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방부는 참전 기념비 아래에 4면에 걸쳐 당시 프랑스군 대대 소속으로 북한·중공군에 맞서 싸우다 숨진 프랑스군 268명과 한국군 24명의 이름을 빠짐없이 새겨 붙였다. 한반도 모양으로 만들어진 이 기념비에는 그동안 프랑스가 유엔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글귀만 새겨져 있었다. 기념비를 둘러보던 그리졸레씨는 “우리는 한국을 잊지 않고, 한국은 우리를 잊지 않는다”고 했다.

6·25전쟁 당시 프랑스군 대대 소속으로 숨진 장병 292명의 이름을 모두 새겨 넣었다. 원래는 참전하거나 전사한 병사들의 이름 없이 기념비만 세워져 있었다./프랑스 국방부

프랑스군은 6·25전쟁에 약 3500명이 참전했으며, 파병 장병 대비 전사자 비율이 7%로 당시 참전한 외국 군대 중 가장 높다. 현재 생존해 있는 참전 용사는 그리졸레씨를 포함해 6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리졸레씨는 6·25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치른 가장 치열한 전투였던 ‘단장의 능선 전투’에 참가했다. 쥬느비에브 다리외섹 프랑스 보훈 장관은 “프랑스군이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프랑스 영토와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엔 주도하에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프랑스군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이름을 새겨 넣기 이전 파리의 6·25전쟁 참전 기념비 모습.

이날 제막식에는 6·25전쟁 당시 프랑스군을 지휘했던 랄프 몽클라르 장군의 아들 롤랑 몽클라르씨도 참석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참전 용사 레이몽 베나르씨의 아내도 찾아왔다. 한국을 잊지 못해 집에 태극기를 걸어두고 살았던 베나르씨는 2015년 별세할 때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의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사한 이브 모알릭 상병의 조카는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모알릭 상병의 인식표를 건네받은 것. 이 인식표는 지난 2019년 화살머리고지 인근에서 발견돼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이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부 장관에게 건넸던 것이다.

쥬느비에브 다리외섹(오른쪽) 프랑스 보훈 장관과 유대종 주프랑스대사. 오른쪽에서 둘째는 파트리크 보두앵 6·25전쟁 프랑스 참전용사협회장, 왼쪽에서 둘째는 클로틸드 드루아르 파리 15구 보훈 담당 부구청장이다./프랑스 국방부

유대종 주프랑스대사는 “프랑스군 참전 용사들의 희생 때문에 한국이 평화를 수호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며 “전사한 참전 용사들의 이름 판이 한국과 프랑스 국민 간 우애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초기에 프랑스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질 때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생존한 참전 용사들에게 마스크를 보냈다. 그리졸레씨는 “프랑스 사회복지 기관보다 한국대사관의 마스크 전달이 더 빨랐다”고 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크리스티앙 캉봉 프랑스 상원 외교·국방위원장, 파트리크 보두앵 6·25전쟁 프랑스 참전용사협회장, 로랑스 파트리스 파리시 보훈 담당 부시장, 송안식 프랑스 한인회장, 손경하 주프랑스대사관 국방무관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