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프랑스·영국이 과거 아프리카에서 약탈해온 문화재를 돌려주는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식민 잔재를 청산하라는 국제적 압력이 지속되는 데다,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의식해 아프리카 국가들을 달래려는 포석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모니카 그뤼터스 독일 문화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현 나이지리아에 있던 옛 왕조 베닌 왕국에서 가져온 청동 유물들을 내년에 나이지리아에 돌려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1897년 영국군은 베닌 왕국을 파괴하며 17세기를 전후해 제작된 동판과 조각상 수천 점을 가져와 미술품 거래 시장을 통해 유럽 각지 박물관 또는 수집가들에게 팔았다. 유럽이 저지른 대표적인 문화재 약탈 사례로 꼽힌다.
독일에서는 베닌 왕국의 문화재가 베를린민속박물관에만 약 500점 전시된 것을 포함해 전국 주요 박물관에 1000여 점 보관돼 있다. 그뤼터스 장관은 “문화재를 도난당했던 이들의 후손과 화해하고 싶다”고 했다. 앞서 독일은 나미비아에서 1893년 약탈한 십자가 모양의 15세기 석조 유물을 과거사 청산이라며 2019년에 돌려줬다.
영국도 문화재 반환을 시작하고 있다. 2019년 애버딘 대학이 1957년 사들인 베닌 왕국의 청동상을 돌려보냈고, 이 해 케임브리지대도 학부모 기증으로 1905년부터 보관하던 베닌 왕조의 수탉상을 나이지리아에 돌려줬다. 베닌 왕국 문화재를 900여점 소장하고 있는 대영박물관도 반환을 놓고 나이지리아 측과 논의하는 중이라고 BBC가 보도했다.
정부 차원에서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을 적극 추진하는 나라는 프랑스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문화재 반환 특별 보좌관을 두고 반환 일정을 점검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나이지리아 옆 나라인 베냉에 파리 케브랑리박물관이 소장 중인 유물 26점을 올 연말까지 돌려주기로 했다. 2019년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세네갈 방문 때 이 나라 민족 지도자였던 오마르 사이두 탈(Tall)이 사용하던 칼을 직접 돌려줬다. 이 칼은 19세기에 프랑스가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았을 때 약탈한 문화재였다.
유럽에서는 훔친 문화재를 식민주의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돌려줘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영국에서 문화재 반환 운동을 하는 인권 변호사 제프리 로버트슨은 “대영박물관은 세계 최대 장물 보관소”라며 몰아세운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아프리카 소장품은 20만점에 달하는 데 그중 상당수가 약탈의 결과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파리의 케브랑리 박물관이 소장한 아프리카 소장품도 7만점이 넘는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문화재 반환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중국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에 맞서 ‘형님 국가’ 역할을 계속하기 위해 옛 식민지였던 나라들에 문화재를 돌려주며 다독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