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이 1800년 5월 이탈리아 원정을 위해 알프스의 가장 험한 협곡인 생 베르나르를 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올해 나폴레옹 사망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서 추모 분위기가 커지고 있지만 나폴레옹이 노예제를 부활시킨 전쟁광이라며 추모에 반대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파리 시내 북동쪽에 있는 라빌레트 컨벤션센터는 다음 달 14일부터 5개월간 나폴레옹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회를 연다. 나폴레옹이 타던 마차를 비롯해 프랑스 곳곳에 있는 유품 150여점을 처음으로 한곳에 모았다. 전시 준비에만 500만유로(약 67억원)가 투입됐다.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 열린 전시로는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140만명)을 세운 2019년 투탕카멘전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나폴레옹이 묻혀 있는 앵발리드(군사박물관)도 5월부터 그의 인생 여정을 다룬 전시회를 열 계획이고, 국립기록원에서는 3월부터 나폴레옹 시대의 정부 문서를 전시하고 있다.

유럽의 기념주화 제작업체 CIT가 발매한 나폴레옹 200주기 기념주화/CIT

올해 나폴레옹이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을 맞아 프랑스가 대대적인 추모 행사에 나서고 있다. 코르시카섬 출신의 프랑스군 장교였던 나폴레옹은 1804년 황제로 즉위한 뒤 공격적인 정복 전쟁을 통해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다.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패한 뒤 유배 중이던 1821년 5월 5일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섬에서 파란만장한 52년의 삶을 마쳤다.

파리 시내 앵발리드(군사박물관) 내부 성당에 있는 나폴레옹의 무덤. 그의 유해는 숨진 지 19년이 지난 1840년 파리로 운구됐으며 1861년 최종적으로 이곳에 안치됐다.

최근 프랑스 분위기는 그의 200주기를 맞아 축제를 만들고 추모하는 쪽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의 인생과 공과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한편에선 국가 기틀을 세우고 프랑스 국력을 만방에 뻗게 한 영웅으로 추모하는가 하면, 다른 편에서는 노예제를 부활시키고 여성을 차별한 전쟁광이라며 추모에 반대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파리 시내 앵발리드(군사박물관) 전경.

나폴레옹재단은 이달 초 ‘나폴레옹을 위하여’라는 책을 발간했다. 국부(國父)로서의 면모를 부각한 책이다. 나폴레옹은 1804년 나폴레옹 법전을 펴내 현대 프랑스의 법률적 토대를 만들었다. 학교 교육과 금융 시스템이 그가 황제로 집권하던 시기에 정비돼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일간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지금까지 나폴레옹을 다룬 책은 그의 사후(死後) 약 8만5000권이 발간됐는데 이는 역사상 어떤 인물보다도 많다.

나폴레옹 가문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동생 제롬의 5대손이다. 지난 2019년 결혼했을 무렵의 사진. 왼쪽의 아내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손이다.

나폴레옹재단의 티에리 렌츠 이사는 일간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나폴레옹이 집권하던 시기는 프랑스 역사의 근본적인 순간이며, 그의 15년 통치 기간이 없었다면 프랑스는 오늘날처럼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019년 프랑스인 29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으로 나폴레옹을 꼽은 사람이 20%로 가장 많았다. 2위는 루이 14세(17%), 3위는 샤를 드골 전 대통령(16%)이었다.

지중해에 있는 프랑스 남부 골프-쥐앙의 주민들이 최근 나폴레옹 200주기를 맞아 나폴레옹 시대 의상을 입는 퍼포먼스를 벌였다../AFP 연합뉴스

반면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찮게 나온다. 우선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목숨을 살상한 장본인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치른 전쟁으로 숨진 민간인·군인이 적게는 325만명, 많게는 650만명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극좌 정당 프랑스앵수미즈의 알렉시 코르비에르 대표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뤄낸 공화정을 뒤엎은 배신의 인물이다. 200주기를 기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폴레옹의 고향 코르시카섬의 아작시오에 있는 나폴레옹 동상. 아작시오에서는 나폴레옹의 200주기 기일인 오는 5월 5일 대대적인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이다./AFP 연합뉴스

여성계 반발은 강도가 더욱 세다. 나폴레옹 법전은 여성을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한다. 결혼한 여성의 법적 권리가 남편에게 있다고 하거나 여성의 몸이 남성의 소유라고 명시했다. 엘리자베트 모레노 양성평등부 장관은 최근 “나폴레옹은 역사상 최악의 여성 혐오주의자”라고 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폐지된 노예제를 8년 만에 되살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르파리지앵은 “인종차별 반대 운동 진영에서 올해 나폴레옹의 기념물을 훼손할 수 있어 파리경찰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역사 연구가이자 작가로서 나폴레옹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티에리 렌츠. 그는 나폴레옹 200주기를 맞아 '나폴레옹을 위하여'라는 책을 펴냈다./EPA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그를 어떻게 추모하느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7년 만 39세에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은 나폴레옹 이후 최연소 국가 지도자다. 평소 나폴레옹을 흉내 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가브리엘 아탈 정부 대변인은 “방식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나폴레옹을 추모할 예정”이라고 했다. 1969년 조르주 퐁피두 당시 대통령은 나폴레옹 탄생 200주년을 맞았을 때 그의 고향 코르시카섬을 찾아가 기념 연설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나폴레옹을 합성한 그림. 마크롱이 나폴레옹만큼 거만하고 권위적이라는 풍자다. 마크롱은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의 최연소 국가지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