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들을 돕자는 월세 상한제 취지야 좋았죠. 월세를 낮추긴 했지만 집주인이나 임대 회사들이 월셋집 내놓기를 꺼리게 됐습니다. 그 바람에 월세를 구하기 어려워진 세입자들이 교외로 밀려났어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손해가 됐습니다.”
독일의 주택 시장 전문가인 콘스탄틴 콜로디린 독일경제연구소(DIW) 연구위원은 최근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월세 상한제를 실시한 충격으로 베를린 시내 월셋집 공급이 57.5% 급감했다”고 말했다. DIW는 96년 역사를 가진 독일의 대표적 싱크탱크이며, 콜로디린 박사는 2005년부터 DIW에서 주택 시장과 빅데이터를 연구하고 있다.
베를린의 사민당·녹색당·좌파당 등 좌파 연립 지방정부가 지난해 2월 23일 시행에 들어간 월세 상한제는 극약 처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이전에 지은 집의 월세는 5년간 동결하도록 했다. 표준 임대료를 제시해 그보다 20% 이상 비싼 월세는 강제로 낮추게 했다.
그는 “상한제 적용 대상인 주택의 월세가 미적용 주택보다 11% 하락하는 효과는 거뒀다”고 했다. 2014년 이후에 지어진 새집이나 그 이전에 지어졌더라도 완전히 수리한 집에 대해서는 월세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는데, 이런 집은 베를린 시내 월셋집의 4%를 차지한다.
그는 “문제는 집주인이 월세 수입을 예전만큼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시장의) 월셋집 공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베를린에서 세입자를 찾는 월세 광고는 상한제 시행을 예고하기 직전 한 달 동안 주당 평균 698.5건이었다. 하지만 월세 상한제 실시를 예고한 2019년 6월 4일부터 시행 전날인 2020년 2월 22일 사이 주당 619건으로 줄었고, 시행 첫날인 작년 2월 23일부터 한 달간은 주당 263건으로 급감했다. 월세 상한제 시행 예고만으로 월셋집 공급이 11% 감소하더니, 실제 시행에 들어가고 난 이후 57.5%가 더 줄었다는 뜻이다.
월세 물량이 줄어든 이유는 집주인이나 주택 임대회사들이 현재 헌법재판소가 심의 중인 월세 상한제에 대한 위헌 소송 결과를 기다리면서 공급을 줄인 탓이 크다. 독일에서는 한번 세입자를 받으면 내보내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 집주인들이 낮은 월세로 계약하기보다는 공실(空室)로 비워둔 채 버티고 있다. 임대 수익 기대치가 낮아지면서 신규 주택 건설 투자가 정체되는 현상도 있다. 콜로디린 위원은 “월셋집 공급이 줄어든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서 베를린에 새로 이사 오거나 시내에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는 사람들이 집을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결국 월세 상한제를 시행하지 않는 주변 도시로 밀려나 월셋집을 찾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그는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 시행 예고 이후 작년 3분기까지 출퇴근이 가능하고 상한제를 시행하지 않는 포츠담의 월세가 12% 상승했다”며 “같은 기간 뮌헨,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쾰른 등 주요 도시의 월세 상승률이 2~5%인 것과 비교하면 과도하게 올랐다”고 했다.
그는 “요즘 베를린의 집주인이나 임대 회사는 소유한 주택을 완전히 수리해서 월세 상한제를 피하거나 아예 주택을 팔려고 한다”며 “둘 중 어느 쪽이든 세입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베를린은 2010년 이후 10년간 주택 월세가 64% 상승했다.
그는 “2010년 이후 베를린에는 매년 2만5000명이 유입돼 한 해 1만7000채가 새로 필요했지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월세와 주택 매매가격이 동시에 폭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하기보다는 새집을 짓는 게 낫다”며 “구체적 공급 계획 없이 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바람에 시장에 충격을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언제나 월세와 집값이 비싸다며 정부가 집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런 주장에 이끌려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부작용을 부를 수밖에 없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주택 공급을 모두 떠맡는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주택 공급이 정체되다가 결국 중단된다”며 “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지고 국가가 주는 집은 낡아서 만족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주요 외신들도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를 혹평하고 있다. 지난 9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베를린의 임대료 통제 실험은 실패했다”고 보도했고, 앞서 1일에는 블룸버그가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는 재앙(disaster)으로 판명됐다”는 칼럼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