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폴 고갱이 머물렀던 타히티섬을 비롯해 118개의 아름다운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프랑스가 과거 30년간 실시한 핵실험의 방사능 오염 규모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최대 10배까지 많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9일(현지 시각) 프랑스 탐사 보도 매체 디스클로즈는 “프랑스 정부가 폴리네시아에서 1966년부터 1996년까지 193차례 핵실험을 하면서 환경·보건에 끼친 피해를 축소·은폐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디스클로즈는 기밀 해제된 약 2000건의 프랑스 국방부 문건을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진에게 자문해 지난 2년 동안 분석했다고 밝혔다.
디스클로즈는 보통 핵실험에 따른 보상이 이뤄지는 국제적 기준보다 5배 이상 많은 방사능 피폭량이 확인된 주민만 1만1000명에 달하며, 1970년대 폴리네시아 인구 11만명 대부분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의 피해를 본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또한 직접적인 방사능 피해를 본 주민 중 15세 미만 어린이가 600명 포함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 시절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프랑스는 1960년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사막 지대에서 첫 핵실험에 성공했다. 1962년 알제리가 독립한 이후 다른 핵실험 장소를 물색하던 프랑스는 1842년부터 점령해온 폴리네시아로 무대를 옮겼다. 절경을 자랑하는 무루로아 환초(고리 모양 산호초)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핵실험을 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디스클로즈는 193차례 핵실험 중 최소 41번은 방사성 물질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대기권 핵실험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30년에 걸쳐 핵실험이 이뤄진 이후 폴리네시아에는 몸에 이상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여전히 방사성낙진에 고통받고 있다는 주장이 많다. 폴리네시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63세 카트린 세르다라는 여성은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 가족 중 8명이 암에 걸렸는데, 이게 과연 정상이냐”고 했다. 일간 르피가로는 보건 전문가들을 인용해 “폴리네시아 주민들과 핵실험에 참가한 군인들 사이에서는 갑상선암과 백혈병 발병 사례가 정상치보다 많다”고 했다.
피해를 보상하라는 압력이 가중되자 프랑스 핵에너지위원회(CEA)는 조사에 착수해 2006년 방사성낙진으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를 인정했다. 그러나 디스클로즈는 실제 방사능 오염 규모가 CEA 조사 결과의 최소 2배, 많으면 10배라고 분석했다. 디스클로즈는 “CEA가 방사능 오염 빗물을 사람이 마실 가능성을 계산하지 않는 등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정부는 2009년부터 보상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실제 보상받은 폴리네시아인은 63명뿐이다. 폴리네시아 인근 바다에는 거대한 양의 핵폐기물이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 프랑스는 국제사회와 심각한 갈등을 빚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강행했다. 핵실험을 둘러싸고 미국과 마찰을 빚자 프랑스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통합군에서 1966년부터 43년간 탈퇴했다가 2009년에야 재가입했다. 1985년에는 핵실험에 항의하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폴리네시아로 출항한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의 선박이 프랑스 해군 특수공작팀의 기뢰 공격으로 침몰된 적도 있었다. 사고 당시 승선한 11명 중 10명은 구조됐지만, 기자 한 명이 사망해 국제사회에서 비난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