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1세로 명문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 명예교수인 헌법학자 올리비에 뒤아멜. 그는 오랫동안 방송 진행자, 변호사, EU의회 의원, 신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해왔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대우받았다. 프랑스어권의 모든 법학도가 그가 쓴 책으로 헌법을 공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아멜은 프랑스를 움직인다는 말을 듣는 엘리트들의 사교모임 ‘르 시에클(Le Siècle)’의 회장이기도 했다.

올리비에 뒤아멜/AFP 연합뉴스

지식인 사회의 정점에 있던 뒤아멜을 향해 지난 1월초 충격적인 폭로가 터져 나왔다. 그가 1987년 재혼한 두번째 부인 에블린 피지에(1941~2017)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아 데려온 의붓아들 빅터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는 것이었다.

폭로한 사람은 빅터의 이란성 쌍둥이로서 뒤아멜의 의붓딸인 카미유 쿠슈네르(46)다. 이 사건은 한달 넘게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등장 인물들이 죄다 지식인들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배운 사람들의 추악한 내면이 드러나고 있다.

생전 에블린 피지에의 2002년 모습/AFP 연합뉴스

카미유에 따르면, 1988~1989년 뒤아멜은 당시 13~14세이던 빅터의 방에 수시로 들어가 성폭행을 저질렀다. 2년 이상 이런 일이 지속됐다고 한다. 당시 빅터는 쌍둥이 누이 카미유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했다.

쌍둥이가 30대가 됐을 때 카미유는 어머니 에블린 피지에에게 뒤아멜이 어린 시절의 빅터를 성폭행했다고 알렸지만, 에블린은 남편을 보호하기로 하고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카미유 쿠슈네르가 의붓 아버지 올리비에 뒤아멜의 추악한 이면을 폭로한 책 '대가족(La Familia grande).'/AP 연합뉴스

에블린으로서는 세간에 알려진 사회 지도층 집안이라는 점을 고려해 근친상간이라는 충격적인 가정사가 공개되는 것을 꺼렸을 가능성이 있다. 에블린은 출생지가 베트남 하노이인데,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를 식민통치할 때 아버지가 총독이었기 때문이다.

에블린은 소르본대 정치학 교수, 변호사,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여성 좌파 지식인으로 이름값이 높았다. 20대 시절 에블린은 쿠바에 가서 4년간 피델 카스트로의 연인으로 지내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젊은 시절 페미니즘 운동을 가열차게 전개했다. 에블린은 젊은 시절 인권을 강조했지만 막상 아들이 성폭행당한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의붓아버지 뒤아멜의 추악한 이면을 폭로한 카미유 쿠슈네르. 파리5대학 법학과 교수다./위키피디아

딸 카미유는 노동법 권위자로 파리5대학 법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어린 시절 계부 뒤아멜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빅터는 파리7대학 교수로서 천체 입자 물리학의 대가로 꼽힌다.

빅터의 실제 이름은 앙투안이지만 카미유는 빅터라는 가명으로 이 사건을 공개했다.

에블린이 2017년 세상을 뜬 다음 카미유는 뒤아멜의 근친상간 악행을 주변에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올해 1월초 ‘대가족(La Familia grande)’라는 책을 써서 뒤아멜이 숨겨온 과거를 낱낱이 공개했다.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 뒤아멜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시인한 앙투안 쿠슈네르 파리7대학 교수. 쌍둥이 누이 카미유는 책에서 '빅터'라는 가명으로 앙투안을 소개했다./파리7대학

프랑스인들은 지식인으로 존경받던 뒤아멜의 추악한 사생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뒤아멜 역시 사회당원이고 사회당 소속으로 EU의회 의원을 지내 좌파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카미유가 책에 쓴 내용이 큰 파장을 일으키자 빅터는 일간 르몽드 인터뷰에서 “카미유가 쓴 내용은 모두 진실”이라고 했다.

파문이 커지자 뒤아멜은 시앙스포를 감독하는 기구인 ‘국립정치학재단(FNSP)’의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하차했다.

지난 11일에는 시앙스포의 프레데리크 미옹 총장이 사퇴했다. 미옹 총장은 뒤아멜의 근친상간 의혹에 대해 예전부터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언론의 질문에 모른다고 대응했고, 이런 태도가 거짓이라는 논란에 휩싸이자 결국 사표를 냈다.

뒤아멜 사건의 여파로 사임한 프레데리크 미옹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 총장/로이터 연합뉴스

카미유는 어머니 에블린 피지에와 친부를 둘러싼 추문도 공개해 또다른 충격을 가져왔다. 에블린의 첫 남편이자 카미유·빅터의 친부 베르나르 쿠슈네르(82)는 ‘국경없는 의사회(MSF)’를 설립한 의사다. 프랑스 보건장관·외무장관을 지낸 중량급 정치인이기도 했다.

쌍둥이 남매 카미유, 빅터 쿠슈네르의 친부인 베르나르 쿠슈네르. '국경없는 의사회'를 창설한 의사이며 프랑스 보건장관, 외무장관을 지냈다./위키피디아

카미유는 친부 베르나르가 에블린의 여동생이었던 영화배우 마리-프랑스 피지에(1944~2011)와 내연 관계였다고 공개했다. 즉 카미유에게는 아버지의 내연녀가 이모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에블린은 남편과 여동생이 내연 관계라는 것을 알고도 묵인했다고 카미유는 주장한다. 카미유는 책에서 “어머니와 이모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심지어 남편까지도”라고 썼다.

1960~70년대 프랑스 영화배우였던 마리-프랑스 피지에. 그가 형부 베르나르 쿠슈네르와 내연 관계였다고 조카인 카미유 쿠슈네르가 폭로했다./르푸앵

딸의 폭로에 의해 에블린은 사후에 이름값에 먹칠을 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동생과 첫번째 남편을 공유한 삼각 관계였다는 추문이 드러나고 두번째 남편이 아들을 성폭행한 근친상간에 대해 고의로 침묵했다는 사실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쿠슈네르는 국경없는 의사회를 설립해 인도주의를 실천한 의사로 존경받아왔지만 처제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실이 들통나면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