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유서 깊은 카페 '레 두 마고'에 비치된 대형 곰 인형들./파리=손진석 특파원

12일 저녁(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6구 생제르맹 데프레 거리에 있는 카페 ‘레 두 마고(Les Deux Magots).’ 1885년 개업 이후 저명한 작가·지식인들이 즐겨 찾았던 파리의 명소 중 하나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봉쇄령으로 영업이 중단됐지만 내부는 화사했다. 내부 조명을 환하게 밝혀 놓고, 테이블 의자에는 커다란 곰 인형을 앉혀 놓았다. 손님이 찾아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카페 주인이 곰 인형을 배치한 것이다.

곰 인형들은 마치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샴페인이 비치돼 있고, 메뉴판이 펼쳐져 있었다. 행인들은 길을 가면서도 신기한 듯 카페 안을 들여다보았다. 멈춰 서서 곰 인형을 사진에 담던 알렉시라는 20대 남성은 “봉쇄령으로 힘든 시기지만 이런 작은 아이디어 때문에 힘을 얻는다”고 했다.

12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6구 생제르맹 데프레 거리의 카페 ‘레 두 마고’ 내부 테이블 좌석에 대형 곰 인형들이 놓여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작년 10월 30일부터 프랑스의 식당·카페·공연장은 두 달 넘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영업 금지령은 적어도 2월 중순까지는 계속된다. 상인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파리의 일부 업소가 커다란 곰 인형을 내부에 배치해 ‘썰렁함’을 이겨내고 있다. 인형을 통해 폐업한 게 아니라 영업 금지령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말도 나온다.

파리5구에 있는 영화관 ‘스튜디오 데 위르쉴린’도 문은 닫았지만 관객석에 대형 곰 인형을 여럿 앉혀 놓았다. 문을 연 업소에서도 곰 인형을 비치해두는 곳들이 있다. 시내 중심부 BHI라는 부동산 중개사무소는 유리창 아래에 커다란 곰 인형 하나를 뒀다.

봉쇄령으로 문 닫은 파리 시내 한 극장에 비치된 곰 인형들./프랑스24

파리에서 커다란 곰 인형이 등장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가을 서점을 운영하는 필립이라는 남성이 동네 주민들에게 재미를 주고자 가게 앞과 지하철역 입구 등에 수십 개의 커다란 곰 인형을 뒀다. 이웃들이 동참하면서 이 동네는 온통 곰 인형 천지가 됐다. 당시 인형을 퍼뜨린 서점 주인 필립은 요즘 문 닫은 주변 가게에 자신이 갖고 있는 곰 인형을 나눠주고 있다.

파리의 한 부동산 중개사무소 유리창에 등장한 곰 인형./프랑스24

파리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곰 인형이 등장했다. 노르망디 지역 언론에 따르면, 서부 항구도시 르아브르의 ‘르 그리뇨’라는 식당 주인은 실내 테이블에 커다란 곰 인형 넷을 앉혀 놨다.

프랑스의 일부 식당·카페는 지난해 여름 영업이 가능할 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기 위해 곰 인형을 활용하기도 했다. 손님이 앉은 바로 옆 테이블에 커다란 인형을 앉혀 다른 손님이 앉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다. 앉지 말라는 금지 문구를 써 붙이거나 빨간 테이프로 둘러 놓는 것보다 부드럽고 시선도 끌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작년 여름 파리의 일부 식당은 테이블 간 거리 두기를 위해 곰 인형을 사용하기도 했다./이프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