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 시각) 파리 15구 센강변에 있는 프랑스 최고의 요리학교 코르동블뢰 캠퍼스. 흰색 요리복을 입은 에릭 브리파르(60) 교장은 “김치의 확장성은 끝도 없는 것 같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날 코르동블뢰는 한인 단체 AMA와 함께 김치 응용 요리대회를 열었다. 브리파르 교장은 우승작으로 선정된 ‘김치와 셀러리(서양식 미나리)를 얹은 대구 요리’를 가리키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는 “김치와 생선이 서로를 빛나게 만들었다”며 “당장 고급 식당서 팔아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이 대회엔 모두 500여 명이 도전했고, 이날 결선에 오른 프랑스인 10명이 김치를 활용한 음식을 즉석에서 만들며 일합을 겨뤘다.
브리파르 교장이 이끄는 코르동블뢰는 1895년 설립돼 세계 20국에 캠퍼스 35곳을 두고 있다. 미국의 CIA, 일본의 쓰지와 함께 흔히 세계 3대 요리학교로 불린다. 파리캠퍼스에서만 매년 70여 국가에서 2000명이 찾아와 요리를 배운다.
브리파르 교장은 이날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김치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김치는 적당한 신맛과 매콤한 향취를 요리에 불어넣는 묘미가 있다”며 “집에서도 김치로 자주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김치에 구운 고기와 양파를 함께하면 아주 만족스럽죠. 얼마 전에도 감자에 김치를 올리고 구운 쇠고기와 함께 향이 강한 와인을 곁들였더니 조합이 대단했어요.”
그는 미식의 고장 부르고뉴 출신이다. 15세에 요리를 배우기 시작해 정통 프랑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로는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듣는다. 1990년대 초반 프랑스의 전설적인 요리사 조엘 로뷔숑(1945~2018)의 식당에서 차석 요리사로 일하며 로뷔숑에게서 직접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1994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요리 분야 국가 기능장으로 선정했다. 파리 포시즌스호텔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르 생크(Le Cinq)’의 주방을 2008년부터 6년간 이끌며 요리사로서 정점에 올랐다. 그는 2016년 인생의 방향을 틀어 코르동블뢰의 수석 요리사 겸 미식예술연구소장을 맡으며 후학 양성에 나섰고, 2018년부터는 교장도 맡고 있다.
그는 김치가 인기를 끄는 비결에 대해 “유럽에서 발효 음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맛에 깊이가 있고 건강에도 좋다는 소문이 나고 있다”며 “파리에 한식당이 정말 많아졌다”고 했다. 요즘 파리와 근교에는 한식당이 100개가 넘는다.
그가 처음 김치를 접한 건 1989년 도쿄 로열파크호텔 요리사로 일할 때였다. “당시 서울에 찾아가서 김치를 처음 맛봤습니다. 그땐 솔직히 독특한 향취가 강하다고 느꼈죠. 하지만 금세 익숙해져 깊은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구릿한 냄새가 나는 치즈를 즐겨 먹는 프랑스인들은 김치 맛에도 금방 적응합니다.”
그가 요즘 새롭게 묘미를 발견한 건 백김치다. 그는 “백김치를 최근 알게 됐는데 맵지 않게 배추를 발효시킨다는 게 매력적이고 시각적으로도 색다르다”며 “김치 자체가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응용할 수 있는 레시피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그는 오는 9월 코르동블뢰에 6개월짜리 아시아 요리 과정을 개설한다. 한국·중국·일본·태국 등 네 나라 음식 중 한 가지를 선택해 배우는 과정이다. 그는 “아시아 음식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 정식 교육과정을 만들게 됐다”며 “한식이 프랑스 요리의 외연을 넓혀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코르동블뢰에서 젊은이들에게 요리 비법을 전수하면서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주방을 이끌 때 가수 마이클 잭슨,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등 세계적 명사들에게 요리를 만들어주며 성취감을 느꼈다”며 “이제 코르동블뢰에서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하는 것도 요리에 대한 나의 열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한편, 우리나라 김치 수출은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작년 1~10월 우리나라 김치 수출액이 1억1909만달러(약 1294억원)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지난 6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