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각)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산악 접경지대 페르튀스. 북아프리카에서 선박으로 스페인에 밀입국한 이민자들이 프랑스로 넘어갈 때 이용하는 통로다.
이곳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테러 방지를 위해 EU(유럽 연합)가 국경 경비를 강화해야 한다”며 “프랑스는 국경 경비 병력을 2400명에서 4800명으로 2배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그의 바로 뒤에는 자동 소총을 든 경찰관이 서 있었다. 마크롱은 이어 유럽 26국 사이의 자유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에 대해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단일 통화인 유로화와 더불어 ‘하나의 유럽’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인 솅겐조약을 재고하자는 것이다. 솅겐조약 체결국 국민들은 검문검색을 받지 않아 국경을 넘을 때 자동차 속도를 줄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제약 없이 이웃 나라로 넘어갔다. 미국의 주(州)들처럼 장기적으로 유럽이 ‘하나의 연방국가’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포석이었다. 이 솅겐조약을 수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는 것은 유럽에서 잇따르는 테러 때문이다.
테러범들이 솅겐조약을 악용해 여러 나라를 손쉽게 옮겨다니는 사례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프랑스 남부 니스의 성당에서 흉기를 휘둘러 3명을 죽인 튀니지 출신 테러리스트는 지난 9월 이탈리아에 상륙한 뒤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프랑스로 넘어갔다. 불법 체류 신분이었지만 프랑스 정보기관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극단주의 무장 단체 IS(이슬람 국가)의 사주를 받고 지난 2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총기를 난사해 4명을 죽인 무슬림 청년은 슬로바키아에 가서 탄약 구입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11월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를 일으킨 범인들이 벨기에로 도주한 것을 비롯해 테러범들이 몸을 숨길 때 솅겐조약을 악용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럽식 자유 이동이 인명 피해를 가져오는 부작용이 누적되자 마크롱이 솅겐조약을 수술대에 올리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마크롱은 다음 달 EU 정상회의에 수정안을 내놓은 뒤 프랑스가 EU 순회 의장국을 맡는 2022년 상반기까지 솅겐조약을 바꿔놓을 계획이라고 일간 르몽드가 보도했다. 별도로 EU 집행위원회도 내년 중으로 솅겐조약 개선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솅겐조약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이후 유럽에 아프리카·중동 난민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이후 EU 회원국 간에 국경을 둘러싼 마찰이 잦아졌고, 그에 따라 셍겐 조약에 불만을 갖는 나라들이 늘었다. 2018년 독일은 남쪽에서 유입되는 난민을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 쪽 국경 검문을 강화하고 난민의 일부를 오스트리아로 축출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발끈했고, 오스트리아 역시 이탈리아·슬로베니아와의 국경 검문을 강화했다. 테러와 별개로 난민 유입의 반작용으로 유럽 내 민족주의가 꿈틀거린 것 역시 솅겐조약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비롯한 유럽 내 극우 정치 세력은 아예 EU 해체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솅겐조약을 수호해야 한다는 유럽 통합파들이 점점 코너에 몰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물자 이동을 통해 얻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이 유럽 각국의 고민이다. 검문검색 수위를 높일수록 유럽의 단일 시장은 더 많이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정보기관이 테러범의 이동을 감지했을 때나 특정 회원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등 검문을 실시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늘리는 방향으로 수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럽 각국은 최근 테러 위험을 낮추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빈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이튿날인 지난 3일 영국은 5단계로 된 테러 경보를 3단계 ‘상당’에서 두 번째로 높은 ‘심각’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탈리아 의회는 이달 들어 강력한 미국식 테러방지법 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전통 때문에 CCTV가 적은 편인 프랑스에서는 테러범 추적을 위해 안면 인식 카메라를 거리에 설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