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튀르 랭보(1854~1891)와 폴 베를렌(1844~1896)은 둘 다 19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천재 시인으로 꼽힌다. 동성애자였던 두 사람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다. 1995년 개봉한 영화 ‘토탈 이클립스’는 둘의 연애사를 그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랭보 역을, 데이비드 슐리스가 베를렌 역을 맡았다.
지금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는 ‘세기의 동성애자’였던 랭보와 베를렌을 지성인을 추모하는 장소인 파리의 팡테옹으로 이장할 지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프랑스 문인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랭보와 베를렌을 팡테옹으로 이장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청원서에는 작가, 예술가를 포함해 전직 문화부 장관만 9명이 참여하는 등 모두 5000여명이 서명했다. 랭보와 베를렌이 이룩한 문학적 성과를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청원을 주도한 작가 프레데리크 마르텔은 “이제는 동성애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했다.
팡테옹은 루이 15세의 명령으로 파리 중심부에 18세기 말 지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당이다. 1885년 문호 빅토르 위고가 팡테옹에 묻힌 것을 계기로 프랑스를 빛낸 지성인들을 안장하고 업적을 기리는 장소로도 사용하고 있다. 에밀 졸라, 장-자크 루소, 볼테르, 마리 퀴리 등 78명의 지성인이 묻혀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팡테옹에 묻힐 사람을 선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2002년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를 팡테옹으로 이장해 화제를 모았다. 팡테옹에 묻혔다는 것은 국가적 영웅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커다란 영예다.
랭보와 베를렌을 팡테옹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은 적잖은 반대에 부딪혔다. 동성애자도 똑같이 팡테옹에 안장하는 것이 다양성의 인정이라기보다 프랑스 문화의 미국화를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게 반대의 논리다. 랭보와 베를렌의 팡테옹 이장을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도 등장했다.
게다가 랭보와 베를렌의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인생이 국가적인 영웅으로 추앙할만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둘은 1871년 파리 코뮌 당시 무정부주의자들 편에 섰다. 둘이 사귀다가 다툼이 벌어져 베를렌이 랭보에게 권총을 발사해 부상을 입혔고, 그에 따라 베를렌이 수감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사생활도 아름답다고 하기는 어렵다. 베를렌은 랭보와 연인이 되기 전 아내 마틸드를 때리고 아들을 학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년에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된 채로 죽었다. 랭보는 21세에 문학 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이후 아프리카에서 총기 밀매상 등을 하며 유랑 생활을 했다.
랭보는 벨기에와의 국경 지대에 묻혀 있고, 베를렌은 파리 외곽의 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다. 두 사람은 문학적 업적만 놓고 보면 팡테옹에 묻히기에 충분하다는 주장과 그들의 인생 전체를 들여다보면 팡테옹에서 추모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