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 국가 벨라루스에서 지난달 치른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기습적으로 취임식을 가졌다. 벨라루스 국민 수천명은 거리로 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다. 26년째 재임 중인 루카셴코는 지난달 9일 치른 대선에서 압승했지만, 벨라루스 국민은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루카셴코 퇴진을 요구하는 반(反)정부 시위를 벌여왔다.

루카셴코는 사전 예고 없이 이날 오전 대통령궁에서 ‘날치기 취임식’을 가졌다. 그의 여섯 번째 취임식이다. 군인과 경찰이 철통같이 취임식장을 에워싼 가운데 루카셴코는 친정부 인사들 앞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루카셴코는 취임 연설을 통해 “(야권의) 정권 교체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벨라루스에서는 오는 29일 전후로 취임식이 열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루카셴코 측은 허를 찌르듯 날짜를 앞당겼다. 일정이 미리 알려지면 취임식을 겨냥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운데 연단) 벨라루스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수도 민스크의 대통령궁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날 오후 수도 민스크 시내에서는 수천명의 시민이 쏟아져 나와 대선 무효화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을 발사하며 무력 진압에 나섰고, 최소 50명의 시위대가 연행됐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야권은 취임식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야권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2위를 기록한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성명을 내고 “내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유일한 지도자이며 (루카셴코의) 취임식은 광대극에 불과하다”고 했다.

취임식 반대 시위에서 다친 벨라루스 시민/AP 연합뉴스

이날 미국은 루카셴코를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벨라루스 대선 결과는 기만적이며 합법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벨라루스 국민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서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밝혔다.